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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험주의자 경험주의자 2013.01.09



    브라질 살바도르의 어느 겨울날

    우산  Umbrella





    원래 우산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치품도 기호품도 아닌 생필품을 가지고 좋다 싫다 운운하는 것 자체가 웃길 수 있지만 하여간 난 그 귀찮은 물건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 편이다. 이런 내 취향을 밝히면 기인이라도 만난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비나 눈이 오면 어쩌냐고 물어오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어지간히 내리는 비나 눈에 젖는 것은 개의치 않으므로 그대로 방치하고, 정말 심한 경우에는 가까운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가 그치기를 기다리면 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겨울날 브라질 해안부 작은도시 살바도르에서도 그러했다.






    자신이 떨어질 자리를 찾아 사뿐이 앉아 내리는 하얀 눈망울이 아닌 모난 거친 빗방울은 눈가리개에 시선을 빼앗겨 앞만 보고 죽을듯 내달리는 경주마 마냥 거리의 남겨진 온기를 찾아 질주한다. 두 손을 치켜들어 급하게 머리 위를 감싸보지만 사방에서 날아드는 빗방울에 이내 온몸은 축축히 젖어들어갔다. "남미 열정의 나라 브라질에서 먹구름에 소나기라니 이건 좀 반칙아냐?!" 누구에게든 심통을 부리지않으면 화병이 날것만 같았다. 머리를 감싸던 두 손을 다시 얼굴 앞에 가지런히 모아 호~호~ 따스한 입김을 쏟아내며 몇발치 앞에 있는 작은 식당안으로 급하게 들어섰다.



    식당에서는,

    무언가 끓고있는 가마솥에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릴적 강원도 어느 친가집 대청마루에 앉아 너무 달궈져 일부는 거뭇거뭇하게 탄 이불속에 들어가있으면 코끝을 간지럽히던 구수하고 푸근한 냄새 가마솥 귀퉁이에서 흘러나오는 연기에는 왠지 모를 익숙한 그런 냄새가 묻어있었다.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손가락을 뻗어 가마솥 안에 있는 것을 달라고 주문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사이 딱딱한 플라스틱 탁자 위로 내가 주문한 음식이 가지런히 쟁반에 담겨 나왔다. 보슬보슬한 밥에 카레 마냥 뿌려진 국물과 콩, 어느 동물의 작은 살덩이, 그리고 이름모를 야채가 담겨있었다. 이 음식의 이름이 '페이조아다'라는 것은 그 후에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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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조아다 [Fejoada]


    콩과 고기를 함께 끓인 것으로 대표적인 브라질 요리로, 과거 브라질의 흑인 노예들이 만들어 먹던 음식에서 유래하였다. 노예들은 먹을 것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농장주인들이 먹지 않고 버린 돼지꼬리·귀·족발 등을 페이조(feijo)라고 하는 검은콩과 함께 삶아 먹었다고 한다. 요즘은 여러 가지 고기·소시지·베이컨 등과 야채를 넣어 다양한 맛을 낸다.


    보통 수요일과 토요일 점심에 먹는데, 칼로리가 높고 소화되는데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만드는 방법은 우선 검은콩을 하루 저녁 정도 불린다. 다음 날 검은콩과 함께 쇠고기 또는 돼지고기·돼지꼬리·족발·돼지귀·햄·소시지 등을 넣고 하루종일 푹 삶는다. 삶아낸 고기를 썰어 부위별로 그릇에 담고, 볶은 양파·마늘 등을 월계수잎·콩과 섞어 다시 끓인다. 쌀밥이나 감자의 일종인 마니옥 가루와 함께 먹기도 한다.




    잘 익은 콩은 입안에 넣기가 무섭게 부숴지며 달달한 두(豆)즙을 쏟아냈다. 구수한 스프는 찰기가 덜한 밥알 한올 한올에 스며들어 깊은맛을 더해주었고 적당히 간이 배인 고기와 연골은 식감을 풍부하게 해주어 야무지게 음식을 비워내게했다. 따스한 음식에 온몸을 감싸던 냉기가 조금씩 씻겨져간다.






    여유를 찾은 시선은 식당을 넘어 내가 넘어온 거리로 향했다. 작은 도로를 낀 식당앞에는 비를 피해 낡은 건물 차양막이 안으로 피신한 행인들 식당안의 온기를 쫓아 길을 건너오는 행인들 우산을 꼭 쥐고 묵묵히 걸음을 옮기는 행인들 비를 대처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드러났다. 식당 옆에는 외곽도시로 향하는 버스가 모이는 버스정거장과 구시가지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아직은 이 도시를 벗어날 수 없어. 발걸음은 자연스레 구시가지로 떨어지는 엘리베이터를 향했다. 아찔한 높이 아래 새겨져 있는 천연색 가옥들과 높고 낮은 건물들 어느덧 세차게 내리던 빗방울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줄어들어 있었다.







    엘리베이터 위 난간에는 나처럼 줄어든 빗방울을 틈타 거리로 나온 한 사내의 모습이 보인다. 벤치에 앉아 아직 개이지않은 먹구름 아래로 촉촉하게 젖어있는 건물들을 굽어보는 그는 조금은 나와 닮아 보였다. 세상에 말야 '반드시' 라는건 없는거 같아. 누군가 만들어낸 정석(定石)같은 길 위로 누군가 정해놓은 정석(定石)같은 보폭으로 걸어간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재미없을까. 어쩌면 그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어쩌면 말야. 그 역시 우산을 필요치 않을지 모른다. 나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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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바도르의 겨울(Salvador Winter Season)


    브라질 살바도르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계절이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겨울과 여름 두 계절이 나뉘며 겨울은 4 ~ 7월에 해당한다. 비가 많이 내리는 겨울엔 두터운 방한복이 필요하며 여름기간에도 일교차가 큰 편이므로 복장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한다.






    경험주의자

    창업가, 기획자, 여행작가 편의에 따라 꺼내드는 타이틀은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처럼 지극히 불안정하고 또 순수하다 2번의 스타트업 창업 속 직장인이라는 낯선 옷을 수 차례 입고 또 벗으며 줄곧 새로운 것에 목말라있다 개인저서 <저가항공 세계일주>를 비롯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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