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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여행자 :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오사카 쿠로스기>

    경험주의자 경험주의자 2018.10.30

    [프롤로그]

    어느덧 나에게 여행지는 국가가 아닌 도시의 개념이 되어버렸다. 그건 짧은 일정 때문일 수 있겠으나 도시마다 가진 독특한 매력을 알아버린 탓이 더 클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회상할 때 도시의 잔상들은 대부분 낮이 아닌 밤을 배경으로 한다. 따스한 햇볕의 온기보다 찬 입김이 선명하게 보이는 한기 가득한 밤공기가 더 쉽게 기억되는 이유는 뭘까?

    화려한 네온사인, 길가에 나와 있는 호객꾼들. 오사카 도톤보리의 밤은 일본에서 내가 본 가장 요란한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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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오사카의 낮은 밤과는 정반대의 얼굴을 하고 있다. 뜨거웠던 열기가 소멸해버린 도톤보리 거리엔 인영조차 희미하게 새겨졌다. 차분해진 거리를 지나 도착한 장소는 꽤 삭막한 외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자를 대고 자른 듯 반듯한 건물들은 하나같이 채도가 빠진 어둡고 칙칙한 색을 띠고 있었다.

    "이런 곳에 전통 스시집이 있다는 거니?"

    어머니의 의구심을 뒤로하고 예약한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숫제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칠흑색의 건물은 내부로 들어서자 좁고 긴 통로들이 낮은 조도로 둘러싸여 길게 이어져 있었다. 식당은 그 길 끝에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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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맞아준 종업원은 상냥한 말투를 구사하는 중년여성이었다. 그녀의 절제된 몸짓을 따라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이미 먼저 온 손님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예약된 시간 동안 우리만을 위해 초밥을 쥐여줄 셰프는 묵념과 인사 그 중간어 디쯤 될 동작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우리가 주문한 메뉴는 당일 정해진 식자재와 셰프의 판단에 따라 그 수량과 종류가 정해지는 일종의 오마카세*였다.
    *오마카세(おまかせ) : 주문할 음식을 주방장에게 일임하는 것 

    일본식 길고 끝이 뾰족한 젓가락과 따스한 차 그리고 적당히 데워진 물수건이 각자의 속도에 맞춰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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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프는 첫 번째 초밥을 만들기 위해 큼직한 붉은 생선의 살덩어리를 꺼내 들었다. 그 중 일부분만을 도려내어 우리의 몫으로 쥐여주었다. 완성된 초밥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그의 손동작만큼이나 수려했다. 맛은 붉은 기를 내는 생선 중 담백한 편이었다. 살결에서 느껴지는 탄력이 훌륭하여 식감만으로 그 맛을 느끼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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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초밥 역시 붉은 생선을 사용했다. 고명으로 올라간 잘게 빻아진 시소 이외에 크게 다를 거 없는 모습이었으나 그 맛과 향은 좀 전에 그것과 상반되게 매우 진하고 강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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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이어 나온 초밥엔 흰 살을 지닌 새우가 올려져 있었다. 새우 살은 꼬리 끝 갈라짐마저 섬세하게 남아있어 마치 스스로 껍질을 벗고 나온 거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새우살 굴곡마다 발라진 간장의 풍미와 달고, 감칠 맛이 넘치는 새우살 그리고 알알이 식감이 남아있는 밥알의 조합은 입안을 사치스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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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개 초밥의 조개는 살 가운데가 움푹 파여있었다. 깊고 고독한 맛을 내는 조개 내장이 그 안에 자리 잡았고 양옆으로 펼쳐진 살은 데칼코마니의 그것처럼 절묘한 좌우 대칭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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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밥의 주재료는 오징어에서 생선으로 그리고 다시 새우로 이어졌다.

    싱그러운 향이 나는 성게와 굵직한 성게 알이 가득 올라간 덮밥이 코스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텅 빈 그릇들 뒤에 쌉쌀한 말차로 입안을 게워내자 어떤 작업이든 스스로 끝이라는 걸 느낀 순간에 드는 일종의 안도감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약 한 시간 남짓의 식사는 잘 짜인 연극무대 같았다. 그 안에는 주연도 있고 조연도 있었으며 줄거리에 따른 호흡의 안배도 존재했다. 무대에 올려진 각종 장치는 날 놀하게 하고 때론 실망하게 하기도 했지만, 그것들이 다 끝난 뒤에 고스란히 남겨진 여운엔 잠시 내 감정을 내려놓고 쉬어가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그 막연한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아닌 타인의 선택을 받아들이는 일이 익숙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 과거 어딘가 그렇게 살아왔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엔 설렘 대신 무기력이 가득했고 홀로 짊어지기 벅찬 책임과 질책만이 무겁게 남아있었다.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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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당명 : 스시 쿠로스기(黒杉)
    - 위치 : 오사카시 키타구 도지마하마 1-2-1 신다이빌딩 2F
              大阪市北区堂島浜1丁目2-1 新ダイビル 二階
    - 영업시간 : 
    사전 예약제
      【점심】 예약 가능 시간 11:30~13:00
      【저녁】 예약 가능 시간
      (제1부) 18:00~19:00 / (제2부) 20:30~22:00

    - 연락처 : 06-6342-0919
    - 1인당 예상 비용 : 5,000엔~15,000엔

     

    경험주의자

    창업가, 기획자, 여행작가 편의에 따라 꺼내드는 타이틀은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처럼 지극히 불안정하고 또 순수하다 2번의 스타트업 창업 속 직장인이라는 낯선 옷을 수 차례 입고 또 벗으며 줄곧 새로운 것에 목말라있다 개인저서 <저가항공 세계일주>를 비롯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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