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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라나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下

    엄턴구리 엄턴구리 2014.03.29

     

    바라나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_ 下

    역사보다, 전통보다, 전설보다 오래된 도시, 바라나시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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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의 한가운데에 우리는 죽음에 사로잡혀 있다.' -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 익숙하지만 꺼림칙한 단어, 미지의 두려움으로 인해 자꾸만 부인하고 부정하게 되는 것. 우리는 모두 죽는다. 너도 죽고 나도 죽고 그도 그녀도 모두 언젠가 기필코 죽는다. 하지만 아무도 이야기 해 주지 않는다. 죽음이 어떤 것인지. 그러나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죽음의 경험은 공유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래서 다만 두려워 할 뿐이다.

     

     

    바라나시 Varanasi 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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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타는 장작 밖으로 무언가 삐죽이 나와 있다. 한 눈에 봐도 그것은 사람의 발이 분명하다. 까맣게 타들어간 그것은 오래지 않아 툭하고 힘없이 떨어뜨려진다. 행여나 방해 될라 부러 멀리서 지켜보는데 ‘활활활’ 타오르는 죽음의 열기는 이곳도 피하기는 역부족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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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아침도 이웃의 곡소리로 하루를 시작한다. 얼마 전부터 병석에 누워계셨다는 그 집 가장이 막 신의 부름을 받은 터다.

    “파파, 파파-”

    죽은 이의 딸들은 연신 ‘파파’를 외쳐댄다. 현실을 부정하는 갈고리 같은 울음이다. 창자를 쥐어짜는 그 소리만 고요한 바라나시의 아침을 지배한다.

    집 앞은 이미 애도의 물결이 가득하다. 일가친척, 동네 이웃, 가까운 지인들……. 모여든 이들은 같은 마음으로 망자의 부인과 딸들을 위로한다. 멀찍이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들은 나 같은 여행자들이다. 들끓는 슬픔에 생면부지의 여행자들조차 절로 숙연해 진다. 서른 넘게 세상을 살면서 그래도 별다른 굴곡 없는 평온함의 일상이었는지라 죽음은 늘 별개라며 그렇게 치부하고 살았는데 여기 이렇게 눈앞으로 당면한 죽음을 보니 생의 한가운데 비로소 나는 죽음에 사로잡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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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라나시의 미로 같은 골목을 헤매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죽음의 행렬을 마주한다. 처음 그 행렬을 접한 것은 바라나시에 도착하고 그 이튿날 바나라시 시장골목 안쪽 어느 라씨집이었다. 그곳에서 어느 마음 맞는 여행객을 만났고 그와의 수다에 한참 시간 가는 줄 몰랐었다. 라씨는 달콤하고 시원했다. 그릇의 바닥이 보일라치면 눈치껏 채워주는 주인의 서비스도 만족스러운 한때였다. 처음엔 기분이 이상했다. 생각보다 무섭지는 않았는데 어딘지 꺼림칙했다. 그 꺼림칙함을 속으로 삼키고선 부러 모른 척을 했다. 그 존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엔 아직 내가 할 말이 너무 없다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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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는 골목 안 시장 구경을 나설 때다. 화려함은 지향하지 않는지라 장신구 따위 별 관심 없었는데 골목길 어귀에서 만난 작은 가판대에는 눈길을 끄는 뱅글이 즐비했다. 기껏해야 가로세로 채 50(Cm)이 될까한 작은 상자였다. 그 안에 정신없이 흩어져 있는 뱅글들은 이제껏 인도에서 보아왔던 블링블링함과는 다른 단출함으로 나를 잡아끈다. 그곳에서 맘에 드는 뱅글 하나를 집어 들고 한창 흥정에 열 올리는데 멀리서 그 소리가 들려왔다.

     

    “람람 싸드야헤” - 라마신은 알고 계신다.

    “람람 싸드야헤” - 라마신은 알고 계신다...

     

    흥정을 멈추고서 잠시 한쪽으로 비켜선다. 저 멀리 시신을 태운 화려한 꽃가마가 다가오더니 내 앞으로 ‘슥’ 지나친다. 이제 죽음은 어느 정도 일상이 된 듯 가벼운 묵념만 까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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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는 그만 길을 잃고 헤맬 때다. 이제는 어느 정도 미로에 익숙해 졌다 자부하던 때였으니 하물며 손에는 그 흔한 지도조차 들려있지 않았다. 그럴 땐 무조건 강가를 향하라는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얼추 방향을 가늠하고 강가를 향해 간다. 한참을 걸었을까, 골목의 귀퉁이서 무심코 한 발을 내 딛는데 ‘람람 싸드야헤’ 라마신은 알고 계셨다. 급하게 멈춰서는 걸음이다. 찰나의 순간, 내 앞으로 지나는 것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으로 동여진 미라 같은 시신이다. 그 위로 알록달록 꽃장식이 화려하다. 언뜻 그것이 내 몸이 닿은 것도 같다. 온 몸의 잔털이 쭈뼛이 세워진다. 무지(無知)의 두려움에 그것은 불결함으로 간주되니 죽음은 되도록 피하고 싶은 현실이다.

    그 뒤로도 네 번째, 다섯 번째, 그리고 여섯 번째……. 그곳에서 죽음의 행렬은 영원히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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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 마니까르니까 가트는 바라나시에서 가장 큰 화장터로 24시간 끊임없이 시체를 불태운다. 규모는 거대했고 연기는 자욱하다. 시체 타는 냄새는 주변으로 진동한다. 한쪽에선 웃통을 훌러덩 벗은 일꾼들이 마른 장작들을 쉴 새 없이 나르고 있다. 타들어 가는 시체 가까이 슬픔을 억누르는 엄숙한 무리는 망자의 가족들 인듯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멀찍이 떨어진 이곳에 나 같은 구경꾼이 있다. 누구나 호기심에 이곳을 왔을 것이다. 화장터라니, 듣기만 해도 소름끼치는 이곳을 굳이 왜 걸음 했냐 묻는다면 그저 호기심 이란 대답 외에 그 어떤 다른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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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신은 생각보다 오래토록 타들어갔다. 사는 것도 힘겹지만 죽는 것도 참으로 만만치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활활활 타오르는 불길 밖으로 무언가 삐죽하다. 아직 온전한 시신의 일부는 그 모양새를 봐선 아마도 발인 듯싶다. 장작 값이 만만찮은 이곳에서 타다 멈춘 시신은 그대로 갠지스에 떠나 보내진다. 제대로 죽는대도 돈이 드는 세상이다. 그저 한 줌의 완벽한 재가 되기 위해 우리는 그토록 아등바등 세상을 살아가야 하나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불길은 서서히 잦아든다. 육신은 그대로 증발하여 남은 건 하찮은 잿더미뿐이다. 저기 저 쓰레기 같은 가루가 얼마 전까지 나와 내 주변의 이웃이며 그들의 소중한 가족이었던 이다. 생의 한 가운데 우리는 죽음을 생각한다. 나도 언제고 갈 길이라지만 그래도 아직은 그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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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라나시에는 유독 노인들이 많다. 인도인이 삶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죽음이다. 그 죽음을 바라나시에서 맞이하기 위해 노인들은 삶의 마지막 이곳을 찾는다. 인생의 성스런 마감을 위해 강가에 머무는 사람들, 그들은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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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의 개들은 무기력하다. 몸집은 왜소하고 눈은 총기를 잃었다. 피부는 짓무르고 여기저기 두드러기가 산재한다.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걸음에는 영혼이 없어 뵌다. 존재 가치가 없는 생명은 어딜 가나 무시만이 대접이다. 바라나시 거리의 개들에게 죽음은 어찌 보면 고단한 삶의 끝에 신이 내린 마지막 축복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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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이 깊어 어둠이 찾아오면 보트는 오늘도 어김없이 어둠의 갠지스를 유유히 흘러간다. 멀리 화려한 불빛이 가득한 그곳은 매일 밤 성대한 힌두교 의식(뿌자)이 행해지는 매인가트, 다샤스와메드다. 그곳에서 잠시 멈춰 의식의 화려함을 훔쳐본다. 의식은 매일 밤이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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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곳에서 누군가는 디아(Dia)를 팔아 삶을 연명하고 
    디아(Dia)의 불꽃은 우리의 마음을 담아 어두운 강가를 찬찬히 흘러간다. 

    어둠에 쌓인 갠지스를 가르는 사공의 노질이 무언가의 걸림으로 잠시 멈칫 거린다. 그것이 아직 채 타지도 않은 시신의 일부임을 알아버렸을 때 나는 여전히 죽음을 두려워 할 수밖에 없는 나를 본다. 생의 한가운데에 우리는 죽음에 사로잡혀 있다.

    ※ 글과 사진의 상이함은 죽음의 현장을 직접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바라나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 END 

     

     

     

     

    엄턴구리

    용의 머리가 되고 싶은 뱀의 꼬리로 ‘잡다함’이 지나쳐 자칫 ‘너저분함’으로 치닫는다. 미대를 졸업해 그림을 그리며 교양 있게 살줄 알았는데 생뚱맞게 연극과 영화미술에 빠진 탓에 한 몇 년을 작살나게 고생만 했다. 그러다 운 좋게 환경디자인 회사에 취직을 하지만 그저 좀 ‘무료’하단 이유로 지복을 날로 차고, 지금까지 몇 년 째 시나리오 작가가 되겠다며 되도 않는 글들을 끼적이고 있다. 밥먹고 사는 일은 자유로운 기고로 이어진다. 문화 예술 칼럼을 비롯해 다양한 취재 원고를 소화하고 있다. 한 번의 긴 여행과 몇 번의 짧은 여행을 무한 반복 중이다. 덕분에 적당히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견문은 넓혀진 것도 또 아닌 것도 같다. 쉽게 마음이 동하는 갈대 같은 호기심에 뿌리 깊은 나태함이 더해져 도대체가 갈피를 못 잡는다. 여행과 생각, 사람과 글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blog.naver.com/waste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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