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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춘선 타고 떠나는 김유정역 감성 여행

    밤비행이 좋아 밤비행이 좋아 2020.02.07
    김유정역 반나절 코스
    김유정역 앞 '신남큰집'에서 삼계탕 한그릇 > 김유정 간이역 > 레일 파크 > 김유정 이야기집 > 김유정 생가(문학관) > 카페 '더 웨이'에서 커피 한잔

     

    근 들어 시골마을의 목가적 풍경에 집착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뭘 봐도 시골의 고즈넉한 분위기라던가 인적 드문 시골길 혹은 산속에 폭 파묻힌 작은 마을 같은 표현을 들먹이며 비교하기에 이르렀다. 지루했을 게 분명한 중학교 문학 시간의 기억이 적당히 미화되어 평화롭던 수업 시간, 번호 순서대로 돌아가며 소리 내 읽던 어느 작품 속 등장한 ‘그 고즈넉한 시골 마을’이 종종 떠오르는데 이유도 없이 그리워지곤 한다.

    도시에서 태어나 쭉 – 자란 나는 추석이나 설에도 서울로 향하는, 내려갈 시골조차 없는 도시 여자다. 그래서 어쩌다 기차를 타고 여행할 때면 펼쳐지는 푸르름과 누가 보면 휑하다고 느낄 작은 시골마을에서 위안을 받고 재충전의 에너지를 얻는다. 딱 그게 필요했다. ‘시골에 콕 박혀 한 달만 지내고 싶어’ 나는 시골로 가야만 했다.

    어디를 가야 할까? 통영? 왜관? 고창?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시골 동네 이름을 떠올려 보려 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았다. 고민하는 나에게 엄마가 말했다. ‘우리 집에서 전철 타고 10분만 가도 네가 말하는 시골이 풍경이 펼쳐진다’라고. 그러고 보니 맞는 말이네! 경춘선 노선도를 펼치니 오른쪽 귀퉁이에 위치한 역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김유정역.

    IMG_2915_97636153.jpg:: 경춘선 김유정역

    *김유정역: 춘천 신동면 실레마을(경춘선)


    느 집엔 감자 없지? 봄 감자가 참 맛있단다?
    - 김유정 <동백꽃> 중

    중학교 국어 교과서 속 점순이는 참으로 얄미운 계집애였다. 난데없이 남의 집닭을 잡아다가 싸움질을 시키질 않나, 감자로 사람을 약 올리질 않나. 김유정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다시 읽은 봄봄은 그때와 내용이 달라지기라도 한 건지 얄미운 점순이는 온데간데없고 남의 마음 몰라주는 답답한 ‘나’가 남아 있었다. 아니, 철벽도 정도껏이지 그 정도면 눈치를 채고 사이좋게 찐 감자에 소금이나 찍어 먹어야지!

    소낙비로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봄봄과 동백꽃까지 중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낭낭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소설가 김유정의 고향은 춘천이다. 내가 사는 곳에서 경춘선을 타고 약 50여분을 달리면 김유정역에 도착한다. 문학의 동네 김유정역은 안내 표지판부터 특별하다. 진지한 궁서체다. 역에도 기와가 얹혀 있다. 출구도 딱 1개뿐이다. 그제야 최근 몇 주간 책장 위에 착 가라앉은 먼지 같았던 마음에 슬며시 바람이 불었다. 

    IMG_2930_46525051.jpg:: 역 앞에 위치한 우체국 역시 글씨체가 범상치 않다

    김유정역 앞엔 관광객을 의식한 듯 단번에 지어 올린 건물에 프랜차이즈 커피숍과 편의점 그리고 식당이 들어서 있었다. 김유정역을 등지고 오른쪽으로 가면 레일바이크를 탈 수 있는 레일 파크, 왼쪽으로 가면 간이역이다. 인구분포가 아주 좁은 다이아몬드 모양일 게 분명한 실레마을엔 편안한 고요함이 흐른다. 종종 지나가는 ITX와 경춘선이 내는 소리가 유일한 소음이다.

    김유정이 실제로 이곳에 살던 때와 얼마나 변했을까 잠시 상상을 해보다가 그다지 변한 게 없을 것 같다고 멋대로 판단을 내렸다. 높은 건물, 아니 아예 건물 자체가 드문 곳이다. 하다못해 관광객을 제외하곤 길에 걸어 다니는 사람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신기하게도 이런 김유정역엔 소문난 맛집이 있다. 삼계탕 맛집. 감자요리를 기대했던 기대한 나에겐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신남큰집은 아주 오래전부터 맛집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곳이란다. 주메뉴는 물론 삼계탕이다. 

    IMG_2920_97273728.jpg:: 궁중삼계탕

    신남큰집
    궁중삼계탕: 15,000 / 누룽지삼계탕: 16,000 / 닭 볶음탕: 50,000(겨울메뉴)

    ‘나 한 마리 다 못 먹을 것 같은데 시켜서 나눠 먹자’ 징징댔던 게 무색할 정도로 깨끗이 한 그릇을 비워냈고 탁자엔 닭뼈가 쌓였다. 비린내는 전혀 없고 기름기 때문에 찐덕거리지도 않는다. 점순이가 거듭 주장했듯이 감자가 맛있는 지역 특색을 담았는지 닭의 뱃속에 찹쌀 대신 감자가 들어있다. 뜨끈한 온돌장 위에 앉아 삼계탕 한 그릇 하고 나니 온몸이 후끈해졌다.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다시 김유정역 근처로 향했다.

    현재 새로 지어진 역사 옆에 과거 기차가 다니던 간이역이 보존되어 있다. 몇 량의 무궁화 호 내부를 북 카페와 전시실 등으로 바꿔서 운영 중이다. 간이역 내부도 옛날 그대로다. 대기실의 석유난로와 그 위의 양은 주전자, 커다란 유리 창구 위 열차 시간표까지. 내가 어릴 적 서울로 나들이를 나가던 때가 떠올랐다. 아직 경춘선이 들어오기 이전 우리 동네에는 기차가 다녔다. 그 시절 비둘기호와 무궁화호를 타고 청량리역까지 나가는 게 가장 빠르고 편리한 교통수단이었다.

    추운 겨울엔 난로 앞에 바짝 붙어 얼어버린 손발을 녹이며 열차를 기다리곤 했다. 지금은 아쉽게도 간이역이 있던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섰고 기차역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김유정역을 보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잠시 추억에 잠겨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자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그리움에 혹은 신기함으로 간이역을 훑어보고 있었다. 휴가 나온 군인과 데이트 중인 커플, 삼각대까지 챙겨 온 우정여행, 부모님과 함께하는 가족여행 등 지하철을 타고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주말이면 관광객들이 제법 되는 모양이었다.

    IMG_2939_58744352.jpg:: 간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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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일 파크(레일 바이크 출발지)
    * 코스: 김유정역 -> 강촌역 (소요 시간: 1시간 20분)
    * 1일 8회 운영 (9:00 첫 출발, 정시 출발, 13시 이후 매시 30분 출발)
    * 기상 요건에 의해 출발시간 및 차수 변경 가능
    * 이용 요금: 2인승 30,000 / 4인승 40,000 / VR 요금: 1인 5,000원
    * 예약하기 및 더 알아보기

    IMG_2990_67121337.jpg:: 레일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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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이역에서 반대편으로 걸어가면 레일파크가 나온다. 강촌까지 가는 레일 바이크를 운영 중인데 인기가 상당하다. 레일바이크보다는 파크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책 모양의 가벽에 꽂혀 사진을 찍고 있으니 외국인 단체 관광객이 몰려와 레일바이크에 탑승했다.

    김유정역에서 탑승하면 30분 정도를 달려 강촌역에 도착하기 전 간이역에서 하차 후 미니열차를 타고 강촌역까지 이동한다고 한다. 하긴 역 하나를 온전히 자전거로 가려면 허벅지가 남아나지 않을 게 분명하다. 굳이 레일바이크를 타지 않아도 레일 파크는 잠시 쉬었다 가기 좋은 곳이다. 특히나 줄줄이 늘어서 있는 거대한 책들을 보고 있으면 갑자기 독서의 욕구가 생겨 난다.

    '김유정역'은 우리나라 최초로 문인의 이름을 따서 만든 전철 역이다. 따라서 레일 파크에도 책 모양의 벽이 세워져 있고 북카페도 있다. 워낙 작은 마을이라 도서관이 없을까 안타까웠는데 레일 파크 내에 위치한 북카페가 거진 도서관이다. 이곳이 김유정역이 된 모든 이유! 소설가 김유정 생가는 길 건너편에 위치해 있다. 김유정이야기 집과 문학관은 이 작은 마을에서 기다리고 있는 마지막 장이다. 

    IMG_3022_77965094.jpg:: 김유정 생가 및 문학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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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정의 작품으로 채워진 작은 문학관에는 너무나도 익숙한 봉필 아저씨와 데릴사위의 이야기 그리고 점순이와 ‘나’가 기다리고 있다. (동백꽃과 봄봄 모두 주인공 이름이 점순이다) 김유정 생가는 마치 소설 <봄봄>을 연상케 했는데 마침 마당에 소설의 한 장면을 재현해 놓은 듯한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오후의 따뜻한 햇살이 김유정 생가에 내려앉았고 겨울의 앙상한 나뭇가지마저 소설 속 하나의 장치로 만들어 버렸다. 김유정 생가 맞은편에는 김유정 이야기집이 있다. 김유정의 일대기를 설명하고 있는 곳이다.

    김유정 생가부터 이야기집까지 천천히 둘러봐도 1시간이 안 걸리는 곳이다. 모두 둘러보고 나오니 도자기 굽기 체험 공방이 눈에 띄었다. 물레를 돌리며 도자기를 굽는 게 로망이었는데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도자기 공방 옆엔 천연 염색 공방도 위치해 있다. 동절기엔 근처의 음식점이 대부분 휴식기에 들어가지만 두 공방만은 운영 중이었다.  

    려우 도자기 공방
    * 머그컵에 그림 그리기: 10,000 ~
    * 점순이 만들기: 15,000
    * 물레체험: 20,000
    * 더 알아보기 
     

    계속 돌아다녔더니 으슬으슬 추워지기 시작했다. 커피가 들어가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김유정 생가에서 10여 분 정도 비탈길을 올라가면 사장님은 도대체 왜 이런 곳에 카페를 열었을까 절로 의문이 들 정도로 큰 규모의 카페가 나온다. 양수리에서나 볼 법한 그런 카페다.

    이 정도 규모라면 분명 파스타나 피자 같은 음식도 팔 텐데 그럼 먹어야 할까 아직 배가 덜 꺼졌는데 심각하게 고민을 하며 들어간 나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카페 더 웨이(The Way)는 로스터리 카페였다.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내린 커피와 베이커리류만 판매하는 진짜 카페였다. 커피만큼 카페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이동 거리의 부담감을 안고서라도 다시 찾고 싶은 곳이었다.  

    로스터리카페 더 웨이
    * 위치: 신동면 풍류1길 72(김유정 문학관 뒷편에 위치)
    * 운영시간: 10:30 - 21:00
    * 033-264-3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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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팔트가 깔리지 않은 흙길, 전날 비가 왔었나… 축축하지만 제법 단단하게 다져진 길을 걸으며 몇 주 내내 바라던 고즈넉한 시골길을 걷고 있음에 기뻤다. 축축한 흙길을 걸을 때면 운동화에 진흙이 진득하게 묻는데, 볼 때마다 초코무스가 생각난다. (그냥 케이크가 먹고 싶은가 보다.) 내 키보다 낮은 시골집과 낯선 이가 지나가면 컹컹 짖어대는 시골 개, 전혀 가꾸지 않아 바싹 마른 풀이 가득한 마당은 집을 가릴 정도다.

    저 멀리 산이 보이고 그 위로 흰 구름이 걸린 파란 하늘이 있다. 내가 바라던 시골 풍경이다. 황량하게 비어있는 겨울 언덕에 알싸하지만 향긋한 노란 동백꽃 속에 파묻힌 점순이와 ‘나’를 그리면서 비탈길을 내려왔다. 문학 동네에 폭 파묻힌 반나절 나들이의 마무리다.

    밤비행이 좋아

    내 인생은 하나의 움직이는 축제에요.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걸 글로 옮겨요. brunch.co.kr/@avecr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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