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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 상상 2014.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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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남아, 기타, 에피소드

     

    네팔, 그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자, 나만 믿고 따라 오시라!" 

    여행자가 꿈꾸는 매끈하고 세련된 모든 편의를 제공하던 태국 방콕을 떠나 카트만두 트리부완 국제공항 Tribhuvan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한 나의 첫 느낌은 '카오스'라는 한 단어로 정리된다. 마중을 나오기로 한 호텔 직원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대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모양새를 보고 한 무리의 사내가 다가와 순식간에 우리를 둘러쌌다. 

    "픽업 나오기로 한 사람이 안 나왔나 보군요."

    "호텔은 정했나요? 제가 좋은 곳을 아는데 거기로 데려다 줄게요."

    "아니에요. 우리 차가 더 깨끗해요. 우리 차로 가시죠."

    "환전은 했나요? 내가 도와줄까요?"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에 어리둥절해진 우리는 난생 처음 보는 누군지도 모르는 이들을 어찌 믿고 따라가겠냐는 생각에 자기 전화기로 통화하라는 서너 명의 호의까지 거절하고는 공항 구석에 설치된 공중전화기를 찾아내 호텔에 연락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과도하게 느껴질 만큼 친절을 베푸는 낯선 사내들을 뒤로 하고 가까스로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카오스

     

     

    호텔 승합차에 몸을 싣고 드디어 한숨 좀 돌리려는 찰나, 차창 밖으로 펼쳐진 카트만두 시내를 보니 이거야말로 점입가경.

    차선 따위 난 모른다, 길이 있는 곳이면 어디로든 간다는 무대뽀 정신 충만한 자세로 시커먼 연기를 뿜어 대며 도로를 질주하는 낡은 자동차며 오토바이. 여기에 이마에 뻘건 칠을 한 소까지 곳곳에서 출몰해 마치 이곳이 님과 함께 하는 저 푸른 초원인양 매연 가득한 도로 한복판을 여유롭게 돌아다니는데, 이거이거... 아무 사고 안 나고 호텔까지만 도착할 수 있게 해주십사 신께 기도라도 올려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얼마를 달렸을까. 타밀 Tamil. 카트만두를 찾는 여행자라면 꼭 한 번은 들르게 된다는 그 거리로 접어들었다. 우리의 호텔이 이 뒤죽박죽 정신없는 골목 어딘가에 있기 때문이다. 골목이 골목을 낳고 그 골목이 또 다른 골목을 낳은 듯 끝없이 거미줄처럼 이어지는 좁은 길을 돌고 돌아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길. 큰 도로의 카오스는 그대로이되 이제는 거기에 사람까지 더해져 혼잡도 이런 혼잡이 없다.

    그래도 화내는 사람 하나 없이 제 갈 길을 가는 이들과 가게 문 앞에 서서 지나가는 객들을 소리쳐 부르고 혼돈에 빠진 거리를 구경하는 상인들로 타밀의 하루는 활기차게 굴러가고 있었다.

     

     

    호기심

     

     

    호텔에 짐을 푼 우리는 우선 네팔 전통 의상을 하나씩 마련해 입기로 했다.

    포목점에 들러 수십 가지의 옷감을 얼굴에 대보고 몸에 둘러본 후 가장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선택한다. 그리고 나면 어디선가 재단사 아저씨가 짠하고 등장해 날렵한 손놀림으로 우리의 몸 치수를 재는데 낯선 이방인이 진지하게 옷감을 살펴보고 재단을 맡기는 모습이 어지간히 신기했나보다. 근처 가게에서 일하던 분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포목점 입구가 사람으로 꽉 차버렸다. 가게 입구에 쪼그려 앉아 우리를 그저 뚫어져라 관찰하는 이부터 수줍게 다가와 차를 마시겠냐고 묻는 이, "너에게는 이 색이 아니라 저 색이 더 잘 어울린다."고 참견을 하는 이, 재단사 아저씨가 치수를 포목점 주인장에게 불러줄 때마다 폭소를 터뜨리는 이까지. 조용하던 포목점이 갑자기 장바닥처럼 시끌벅적해졌다.

    아, 이런게 바로 동물원 원숭이가 된 심정이로구나 싶긴 하지만, 왠지 이들의 호기심이 기분 나쁘지는 않다.

     

     

     

    티벳의 라싸와 네팔 카트만두를 잇는 무역로의 중요한 근거지이자 상징이었던 보드나트 스투파 Boudhanath Stupa는 티베트 불교 문화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장소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한 이곳으로 전 세계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만큼 근처에 상점이 밀집해 있는데 중국 정부의 손길을 피해온 티베트인들이 이 근처에 많이 모여 사는 까닭에 티베트 상품을 파는 가게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우연히 들어갔던 어느 가게. 티베트 전통 의상과 장신구, 관광객들을 위한 잡다한 소품 등속을 파는 이곳에서 난 예상치도 못한 한국 드라마 광팬을 만났다. 건강한 혈색을 자랑하던 가게 주인 아주머니와 때마침 아주머니를 보러 놀러온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 그리고 그 할머니의 손녀가 바로 그 주인공. 영어도 못하고 네팔어도 못하고 오로지 티벳어만 할 수 있다는 주인 아주머니와 할머니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고난 후 나를 붙잡고 한국 드라마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물론 알아들은 말보다 못 알아들은 말이 더 많지만 왠지 무슨 말인지 다 알 것만 같은 느낌. 내가 들고 있던 책이 한국어로 쓰여졌다는 걸 알고 나서는 "그거 한 번 봐도 되냐?"며 냉큼 책을 가져가 눈에서 레이저를 쏘아 가며 살펴보시던 두 분.

    따뜻했던 그 날보다 더 따끈따끈했던 그분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연민

     

     

    카트만두, 파탄, 박타푸르는 네팔의 카트만두 계곡에 위치한 3대 고도 古都로 유명하다. 이 중에서도 박타푸르는 개발이 늦어져 가장 낙후된 곳인데 전화위복이라고 그 덕분에 중세의 느낌이 오늘날까지도 가장 많이 남아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박타푸르에서 지난밤을 보낸 우리는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박타푸르 북쪽 언덕에 있는 또 하나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짱구 나라얀 사원 Changu Narayan Temple으로 향했다. 이곳은 리짜비 왕조(4세기-9세기) 때 만들어진 조각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 '살아 있는 박물관'으로 불리는 곳이다. 짱구 나라얀 사원이 높은 언덕 위에 올라 앉아있는 탓에 우리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은 낡은 버스를 타고 언덕을 한참 오른 후에도 다시금 걸어서 언덕길에 형성된 박타푸르보다도 더 쇠락해 보이는 짱구 마을길을 따라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길가의 한 허름한 집 창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누군가가 우리를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2층 창문에 빼꼼하니 얼굴을 내밀고 우리에게 말을 건넨 이는 한 사내였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지만 손을 급하게 휘젓는 것을 보니 "잠깐만 기다리라."는 의미인 것 같아서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예의 그 사내가 자그마한 아이 한 명을 안고 나타나 자기집 1층 문턱에 앉더니 우리에게 사진을 찍어달라는 것 아닌가. 찍어달라는데 못 찍을 이유야 없지. 찰칵찰칵. 여러 번 찍혀본 솜씨인듯 능숙하게 포즈를 취하던 그가 인사를 하고 떠나려는 우리에게 별안간 손을 내밀었다. 돈을 달라는 거다. 순간, 짜증이 치밀었지만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딸까지 동원해 여행객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구걸 아닌 구걸을 하는 아비의 심정을 생각하니 짜증으로 가득찬 내 마음에 문득 연민이 비집고 든다.

    이날 짱구 나라얀 사원을 구경하는 나의 마음 속에는 그곳에서 만난 고대 왕조의 조각상 보다도 이들 부녀의 얼굴이 연민이라는 감정과 함께 더 깊이 남아 있었다.

     

     

     

    박타푸르에서 소형 버스를 타고 먼지 풀풀 날리는 도로를 따라 40여 분을 달려 빠노띠Panauti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천천히 걸으며 마을을 둘러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알고 보니 우리가 걷던 그 길에 학교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학교가 하나 있었던 것. 살짝 들여다보니 창문이 달려 있어야 할 위치는 휑하니 뚫려 있고 아이들이 가득 들어찬 교실은 전등조차 켜있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네팔을 여행하면서 네팔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해 일본 정부에서 파견 보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 나라는 도시에서도 단전이 예사이기에 시골 마을은 사정이 더 안 좋단다. 게다가 선생님 한 명 당 학생 수가 100명 정도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고, 특히 시골 마을의 경우, 학교에서 농업 기술처럼 '생활에 필요한 실용적인 기술'이 아닌 '언제 써먹을까 싶은 쓸모없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는 부모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교육의 혜택을 지속적으로 받는 아이가 많지 않아 약 70% 정도의 아이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지만 졸업 자격 시험을 치르는 아이는 7%에 불과하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내가 그랬듯, 쉬는 시간에 쪼르르 달려나와 학교 앞 구멍 가게에서 간식거리를 사먹거나 학교 근처를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얘네들 중 과연 몇 명이나 교육의 혜택을 끝까지 누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마지막은 감사

     

     

    처음 네팔에 도착한 나는 이 나라의 무질서함에 놀랐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네팔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제 내일모레면, 아니, 이제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네팔이라는 나라가 좋아져버렸다. 이런 생각의 변화에는 네팔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추억이 큰 영향을 미쳤는데 그 중에서도 화룡정점은 바로 이 사진 속 청년과의 만남이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떼가며 공항을 향해 가는 길.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정말 그 날은 내가 묵던 호텔 근처에 큰 장이 열려서 사람, 동물, 물건으로 안그래도 좁은 골목이 미어터지기 직전이었다. 함께 여행을 했던 친구들은 며칠 더 남아 있기로 한 터라 근처 큰길까지만 배웅을 받기로 하고 함께 호텔을 나섰는데 문제는 여권이며 항공권이 든 가방을 친구가 대신 들어 줬다는 것. 그리고 그 복잡한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서로의 위치를 잃고 각자 헤매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중 그 누구도 핸드폰을 들고 있지 않았다는 것.

    비행기가 출발한 시간은 다가오고 내 가방을 든 친구는 사라졌고 호텔로 되돌아 가보자니 시간이 부족할 것 같고 그렇다고 계속 헤매다가는 귀국 항공편에 진짜로 오르지 못할 것 같고.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더니 이렇게 네팔에 더 머물게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던 찰나, 며칠 전 카트만두 두르바르 광장에서 만났던 한 청년이 내 눈 앞에 나타났다. 내 사정을 들은 그는 제 전화기를 꺼내 호텔에 전화를 하고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시장이며 두르바르 광장 주변을 살펴보며 내 친구들을 찾아보게 하는 등 온갖 노력을 쏟아붓더니 결국 사라졌던 친구들을 거짓말처럼 내 앞에 데려다 줬다!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왔지만 네팔에서 만난 사람들은 유독 순박하면서도 호의가 넘치는 이들로 기억된다. 여행자였던 나도 마찬가지의 관심과 호의를 그들 기억에 새기고 돌아왔기를 바랄뿐이다.

     

     

     

    상상

    책, 여행, 전시, 그림, 공연.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몽실몽실. 취미생활자, 상상입니다. ☺ http://blog.naver.com/seefahrt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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