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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숲 향 가득한 산골짝 온천마을, 쿠로가와

    제주레이 제주레이 2018.10.23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늘 떠나야 하는 이유를 만든다. 나는 날씨가 쌀쌀해지면 온천이 생각난다. 일본엔 온천마을이 많지만 쿠로가와는 내가 그동안 갔던 일본의 여느 유명한 온천 도시보다 멋진 곳이었다. 숲 내음과 새소리, 물소리 그리고 소담한 골목까지. 몇 걸음만 걸어봐도 몸과 마음이 절로 정화되는 곳이다. 게다가 일본에서도 물 좋기로 소문난 곳이니 온천 후에 료칸 창가에 앉아 피톤치드를 한가득 받고 있으면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한적한 숲속 시골마을,
    예스러움이 매력인 쿠로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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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로가와는 시간이 멈춘듯한 예스러움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온천마을이다. 규슈지역의 유명한 온천인 유후인, 벳푸 등에서는 보기 드문 시골 풍경이다. 마을의 우거진 숲 사이로는 맑은 개천이 흐른다. 쿠로가와(黑川)라는 이름은 철분이 많아 붉은색이 도는 물이 밤에 보면 검게 보이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온 마을이 하나의 료칸, 온센 메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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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로가와는 이 물줄기를 중심으로 약 30여 개의 전통 료칸들이 줄지어 온천마을을 이루고 있다. 벳푸 같은 대형 온천 도시에 비하면 이게 끝인가 싶을 정도로 작고 아담하다. 하지만 쿠로가와는 그것이 큰 장점이 된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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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과 하나인 듯한 쿠로가와의 료칸들 

    오래전부터 많이 알려졌던 곳은 아니다. 쿠로가와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건 1980년대 '온 마을이 하나의 료칸'이라는 컨셉으로 시작된 온센메구리(온천순례)의 공이 크다. 온센메구리는 자유 입욕권을 이용해 쿠로가와에 있는 료칸의 온천탕 중 세 곳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쿠로가와만의 온천여행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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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천 자유입욕패 뉴토테가타 

    입욕패 뉴토테가타(入湯手形, Onsen Hopping Pass)는 물에 젖지도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게 삼나무로 만들었다. 마치 마패처럼 동그랗게 생겨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일명 온천마패라 불린다. 쿠로가와의 관광안내소인 카제노야(風の舎)에서 구입할 수 있다. 온천마패의 가격은 성인이 1,300엔이다. 무려 세 곳이나 들를 수 있으니 료칸에서의 온천욕을 여행코스처럼 즐기는 사람에게는 가격도 천국이다. 

     마을관광안내소 카제노야 風の舎 

     운영시간 : 오전 9시~ 오후 6시
     뉴토테가타 가격 : 성인 1,300엔 / 유아~15세 700엔 / 6개월간 사용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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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로가와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 

    온센메구리는 쿠로가와의 마을 풍경도 바꿔놓았다. 쿠로가와는 일본에서 유카타를 입고 돌아다닐 수 있는 몇 안 되는 온천마을 중 하나다. 유카타는 보통 료칸 안에서만 입지만 쿠로가와는 온천마패 하나로 마을 전체가 하나의 료칸이 된 셈이니 유카타를 입고 다니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아이들이 많았던 가족여행이라서 온센메구리는 엄두도 못 냈지만 쿠로가와의 이런 이색적인 분위기에 동참했던 것만으로도 모두에게 좋은 추억이 되었다. 온센메구리는 반나절 정도 머무르면서 할 수도 있지만 진짜 힐링을 하려면 여유 있게 료칸에 하루 묵는 것을 추천한다. 

     


     

    한적하고 아기자기한 쿠로가와 골목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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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마모토현을 대표하는 캐릭터, 쿠마몬 

    쿠로가와는 구마모토현에 속해있다. 쿠로가와에 가니 구마모토현의 캐릭터인 쿠마몬이 더 많이 보인다. 한때는 헬로키티 다음으로 성공한 캐릭터라고 알려지기도 했다. 초반의 강풍에 비하면 지금은 그 인기가 덜하지만 여전히 후쿠오카, 유후인, 벳푸, 다자이후 등 구마모토현이 아닌 규슈의 다른 관광지에서도 지갑을 열게 만드는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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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된 스타일의 쿠로가와 상점 입간판 

    옛것은 옛것대로 지키면서 디자인까지 멋지게 입힌 센스도 발견! 상점 아이콘과 상호, 영업시간 등이 골목 곳곳에서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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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KU 베이커리 

    도시에서야 흔하게 볼 수 있는 슈크림 빵이지만 쿠로가와 같은 시골에서 만나니 왠지 더 반갑다. 다들 나 같은 마음일까. 이런 곳에서 줄을 서서 빵을 기다리게 되다니. 다행히 맛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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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은 쿠로가와의 전설이자 온천의 시작이 되었다고 전해 내려오는 지장이 모셔진 곳으로 마을의 중심에 있다. 사실 중심이라고 말하기도 무색할 정도로 마을이 작다. 온천마패를 이곳에 걸어두고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설이 있다. 올라가 보면 마패가 아주 많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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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모토료칸 입구에 있는 카오유 

    쿠로가와에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온천이 있다. 얼굴 온천 顔湯(안탕), 카오유라고 읽는다. 지붕처럼 생긴 네모난 나무통에서 나오는 온천의 후끈한 증기가 나온다. 태어나서 처음 봤는데 누구 아이디어일지 기발하다.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피부 미인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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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로가와 골목풍경 

    허리에 마패 하나 차고 동네 골목 걷다가 온천도 하고 간식도 사 먹고 또 온천 하고 밥도 사 먹고 쇼핑도 하고 운 좋으면 마패로 할인도 받고! 쿠로가와는 한마디로 온천욕을 마음껏 누리기에 최적화된 마을이다.  

     


     

    숲내음이 방안까지 가득했던 이코이료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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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붕 위에 뿌리를 내린 나무 

    쿠로가와에서 하루를 머물렀던 이코이료칸.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지어진 목조 료칸으로 복도며 대들보 등 반들반들한 통나무에서 오랜 역사가 느껴졌다. 온센메구리대신 골목 구경을 조금 했고 오후에 한번, 자기 전에 한 번, 아침에 한 번 내 숙소 이코이에서 편하게 온천욕을 했다. 허영만 님이 쓴 여행책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를 보면 온천욕은 하루 세 번이 좋다고 한다. 첫 번째는 피로가 떨어져 나가고 두 번째는 때가 나가고 세 번째는 근심이 없어진다고 한다. 단, 네 번째는 힘이 빠져나가니 세 번까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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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인탕(비진유)이 유명한 이코이료칸 

    이코이료칸은 쿠로가와 TOP5로 온센메구리 코스로도 인기 있는 료칸이다. 프라이빗 스파까지 포함하면 10개가 넘은 작은 온천탕이 여러 공간에 나누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미백효과가 뛰어나다는 미인탕이 유명하다. 쿠로가와에서 클레오파트라 머리를 한 미인도를 발견한다면 거기가 이코이료칸이다. 참고로 쿠로가와에서 벳푸와 같은 현대적인 시설을 기대하면 안 된다. 호텔같은 료칸은 내겐 매력이 없다. 정갈하지만 오랜 시간 사용되어온 전통 료칸이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즐길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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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센타마고(온천계란) 

    개당 50엔 하는 온센타마고. 일본 온천 여행을 하는 중이라면 자주 만날 수 있고 꼭 먹어봐야 할 별미다. 우리나라 찜질방에서 계란과 식혜를 그냥 지나칠 수 없듯 온천 후에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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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코이료칸에서 묵었던 Fubo라는 이름의 룸. 큰 방이 두 개로 나뉘어 있어 어른 4명, 아이 4명이 편하게 쉬었고 내부에 작은 온천탕이 따로 있어서 아이들 데리고 머물기 편했다. 아이들이 넷이나 되다 보니 적막함이나 호젓함 같은 것은 기대할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하루 수만 명이 방문하는 유명한 온천마을에 비하면 아이 넷쯤이야... 쿠로가와를 우리가 다 빌린 것처럼 충분히 힐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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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로가와는 해발 700m에 위치한 산속에 있다. 게다가 이코이료칸은 창밖까지 온통 나무로 쌓여있어서 방 안까지 가득 찼던 상쾌한 숲 향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산골짜기에 있는 오래된 외할머니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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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료칸 입구의 이로리(囲炉裏) 

    아침저녁으로 피웠던 료칸 입구의 이로리(囲炉裏)는 생소하면서도 분위기가 좋아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일본의 전통 난방장치인 이로리는 방바닥에 살짝 파놓은 네모나게 생긴 넓은 화로라고 생각하면 된다. 저녁 먹고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를 들으면서 담소 나누기 좋았던 공간이다. 그 옆으로 야외 족욕탕은 간단하게 피로를 푸는데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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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관 건물에는 온천과 식당이 있다. 1층에는 아담한 상점이 하나 있는데 쿠마몬과 더불어 미인도가 그려진 이코이료칸의 화장품도 판다.

     


     

    늘 설레이는 가이세키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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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코이료칸 가이세키 석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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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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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쿠로가와를 떠날 시간. 산신령이 등장할 것 같은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이날은 하루종일 내렸으면 좋겠다 싶었다. 숲에서 뿌리는 향수 같았다. 전날 보지 못했던 우산이 꺼내져 있다. 온센메구리를 다니는 여행객들에게 빌려준다고 한다. 이 우산은 료칸끼리 공유하고 있어서 다시 반납하러 올 필요도 없다. 쿠로가와는 정말 온 마을이 하나의 료칸이었다. 

     


     

    공기 좋고 물 좋은
    산골짝 온천마을, 쿠로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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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쯤 빨갛게 물들었을, 그리고 곧 다시 하얗게 변할 쿠로가와.
    사실 쿠로가와는 이제부터가 하이라이트다. 

    망설일 시간이 없다.

     

    제주레이

    겁없고 새로운 것 좋아하는 여행에 최적화된 여자 제주도에서 '제주감각'이라는 여행서를 만들었고, 이제 섬 밖으로 자주 나가는 Next 세계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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