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니면서 지난날의 사진들을 정리하다 보면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다.
그러므로 하루라도 젊고 팔팔할 때 조금이라도 더 어린 나를 더욱 좋은 배경에서 기록해둬야 한다.
△ 이런 곳에서
직장인이 시간이 없지 돈이 없진 않아! 하는 허세라도 부리려고 월화수목금금금 통장을 스쳐 지나는 월급날을 바라보며 사는 것 아니겠는가.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는 1년 중 한두 달씩 의무적으로 휴가를 떠나야 하는 건 산 넘고 물 건너 남의 나라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큰맘 먹고 여행을 떠나고 싶어도 주말 끼고 연차 월차 긁어모아 휴가 내는 것도 눈치 보이기 마련인 대한민국의 직장인에겐 사실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은 이 슬픈 일상이란. 어렵게 모으고 얻어낸 금 같은 휴가. 마음 같아서는 지구 완전 반대편으로 날아가고 싶지만 우리네 실정에서 긴 비행시간과 10일, 20일의 긴 여행 일정은 이직과 휴직이 아닌 이상 그림의 떡인 경우가 대다수란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오늘은 긴 휴가 필요 없이! 2시간 이내의 짧은 비행시간을 투자해 최고로 이국적인 풍경을 즐길 수 있으면서 가을 감성 담뿍 인생사진까지 남길 수 있는 중국 여행지를 소개해볼까 한다.
이곳은 바로 중국 대련.
이상한 부분에서 깔끔한 체를 하고, 냄새에 민감하고, 아기자기한 것 유난히 좋아하는 에디터. 솔직히 털어놓자면 이런 취향에 중국은 썩 알맞은 여행지는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행하기 좋은 10월에 열 일 제쳐두고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이유는 일 년 열두 달 중, 길어야 딱 두 달만 볼 수 있다는 홍해탄의 붉은 바다를 보고 싶어서였다.
그렇다.
지극히 세속적인 에디터의 목적은 애초부터 첫째도, 둘째도 사진이었다. 홍해탄이 있는 판진 지역은 대련과 심양의 중간지점에 있으니까 겸사겸사 대련, 홍해탄, 심양까지 여행할 수 있는 비행기 스케줄로 모두 다녀올 수 있었다.
비록 출발은 기대감이 한없이 낮은 상태였으나 현실은 중국인들도 여기야말로 포토스팟이라고 손꼽는 중국 여행지! 인생사진의 성지가 곳곳에서 에디터를 기다리고 있었단 사실. 큰 기대 없이 떠났던 게 때때로 조금 미안해졌을 만큼 동양인 듯, 동양이 아닌 듯 독특한 분위기가 곳곳에 포진하고 있을 줄이야. 그래서 오늘은 반성의 의미를 담아 넓고 넓은 대륙에서도 현지의 청춘들이 SNS용 셀카 인증샷에 최적화되었다고 손꼽는 여행지 몇 곳을 콕 집어 이야기해볼까 한다.
1 중국인 듯 아닌 듯 인생샷 명소, 대련
대련의 첫인상은 '중국에도 이렇게 깨끗한 동네가 있다니'였다. 거리고 건물이고 정말 깨끗했다.
항구도시 특유의 개방적인 느낌에 베네치아를 본떠 만든 동방수성, 어인부두, 해변 거리, 러시아 거리, 일본 거리 등 동서양의 느낌이 묘하게 어우러진 이국적인 건물들이 도시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 동방수성의 낮과 밤 ▽
곤돌라 뱃사공이 베네치아처럼 세일러복을 장착해주었으면 더 좋을 텐데, 싶긴 했지만 '중국의 베네치아'란 수식에는 점퍼 차림 뱃사공의 모습도 왠지 어울리는 것 같은 기분.
동방수성은 같은 장소라도 낮의 모습과 밤의 인상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낮에 한번, 해지고 한번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낮과 해 질 무렵에는 얼굴이 잘 보이는 인물 중심의 사진을 실컷 촬영하고, 해가 진 뒤에는 조명을 활용한 감성 사진을 남기면 인스타그램에 한달쯤은 거뜬히 #셀스타그램 #여행스타그램 #여행스냅 태그를 달고 업데이트할 수 있을 것이다.
△ 이국적인 도시 곳곳의 아기자기한 카페들을 찾는 재미
어인부두에는 바로 그 모미카페가 있다. 제대로 항구도시 같은 느낌이라 아무 데서나 막 찍어도 그림이 되지만 모미카페에서는 특유의 사랑스러운 색감 때문인지 전문 사진사를 대동하고 커플 스냅을 찍는 이들이 꽤 많았을 정도로 포토스팟이었다.
쇼핑과 카페 놀이를 애정하는 이들이라면 분위기는 저 먼 나라의 레트로한 항구도시인데 물가는 중국이라는 것도 어인부두 지역의 큰 장점으로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름 그대로 러시아가 남기고 간 옛 건물들이 남아있는 '러시아 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거리 하나에 러시아 느낌의 건물들이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구역이니 긴 시간 할애하지 않고 감성샷 남긴 뒤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에 알맞은 장소랄까.
△ 전차 특유의 감성 ▽
대련을 여행할 때에는 19세기 전체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해 복고풍 분위기부터 느낌 있는 사진 배경까지 만능인 교통수단, 전차에 타보는 것도 추천한다. 이 전차를 타고 성해광장, 중산광장, 우호광장 등 현지인들의 휴식처가 되는 광장들을 찾아가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낯선 교통수단은 낯선 여행지를 조금 더 특별한 기억으로 만들어주기도 하니까. 이런 도시 자체의 분위기를 담은 생활감 가득한 요소야말로 특색있는 풍경이기 때문에 더할나위없이 좋은 인생샷의 배경이 된다.
2 현지에서 더 유명한 중국 여행지, 홍해탄
홍해탄은 가을이 되면 바다의 갯벌이 붉은색으로 물든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나무에 단풍 들듯 갯벌에 자생하는 식물이 붉은색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리미티드 에디션 좋아하는 에디터가 '중국은 나랑 잘 안 맞는 것 같아'라던 평소 지론은 깔끔히 접고 '바다에 드는 단풍이라니, 로맨틱하기도 하지...'라며 10월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마음속의 원픽을 꽂았던 바로 그곳.
꽤 넓은 부지이기 때문에 각 스팟 사이를 위 사진과 같은 셔틀버스가 운행하는데 이 셔틀의 디자인과 색감이 탁 트인 주변 풍경과 매우 잘 어울렸다. 인파가 조금 적은 날 시간의 여유를 두고 들렀다면, 기차에 올라타는 보헤미안 컨셉으로 파파라치 샷을 남기고 싶은 그런 로맨틱한 디자인이었다.
셔틀이 운행하는 도로를 중심으로 한쪽엔 붉은 바다가, 다른 한쪽엔 황금색 갈대 물결이 가득한 풍경. 드넓은 대륙이어서 가능한 지평선에 감탄하는 늦은 오후가 천천히 지나갔다.
아, 홍해탄에서 느낀 한 가지.
스카프를 날리며 찍는 게 현지 여성들의 유행인지 다들 화려한 색감의 스카프를 흩날리고 계셨지만, 홍해탄에서 인생사진을 남기려는 분들을 위한 개인적인 추천은 뉴트럴한 색감이나 무채색의 트렌치코트이다. 배경의 색이 화려한데 내 몸까지 화려하면 그림이 촌스러워지기 쉬운 법. 붉은 바다와 금빛 갈대 모두 어울리게 가을 감성은 살리면서 배경과 내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사진을 위한 #ootd 도 고민해보시길.
3 산과 동굴을 한 번에! 본계수동과 심양 고궁
본계수동은 동굴이라기에 그냥 종유석 가득 어두컴컴한 동굴일 줄 알았지, 이런 단풍 든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여행지의 하이라이트인 종유동굴은 꽤 쌀쌀하고, 내부는 꽤 길고, 동굴을 유람하는 보트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바꿔 말하면 내부는 인물 사진 촬영에 적합한 환경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덕분에 종유동굴 안에서만큼은 셀카 생각은 잠시 내려두고 물과 돌이라는 소재로 땅 밑에 얼마나 장대한 그림이 그려지는지 감탄하면서 감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 본계수동 내부
세월이 만들어 낸 예술작품인 종유석에 형형색색 조명이 더해진 화려한 모습도 볼만했지만 산과 물, 바다, 동굴을 한 코스로 만날 수 있다는 게 본계수동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여 산은 보라고 거기에 있는 것이라 심지 굳게 주장하는 1인의 산악 불호자에겐 입구에서 본계수동 근처까지를 오가는 미니버스가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음을 스리슬쩍 강조해 본다.
심양 시내에서 마치 한국의 인사동 느낌을 풍기며 위치한 고궁도 인생사진 핫플레이스였다. 고궁이 인물 스냅 핫플이라고? 싶었지만 현장을 가 보니 여행자 느낌 풀풀 풍기는 나 같은 이방인뿐만 아니라, 현지의 청춘들이 고궁의 붉은 벽을 배경으로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프로필사진을 촬영하고 있을 정도로 힙한 곳이었다.
드넓은 땅덩이를 자랑하는 중국 특유의 여유로운 구성에, 서양의 느낌을 아빠 숟갈로 인심 좋게 한 스푼 떠 넣은 것 같은 중국 여행지를 찾는다면 대련-여순-홍해탄-심양 코스가 신선한 선택이 될 듯하다.
내가 셀카로 막 찍었든 지나가는 귀인께서 시크하게 틱 찍어주셨든 분위기 있게 그날, 그 순간, 그 기분을 그대로 담은 신의 한 컷이 가능한 여행코스를 찾는다면? 그 해답은 멀리 있지 않다. 중국 대련과 근교 여행지라고 할 수 있다. 자타공인 셀카장인 타이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에디터의 솔직한 평이다.
※ 취재 지원 : Get About 트래블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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