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별 헤는 밤 10절 – 윤동주 作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 입니다.

겨울을 지내며, 봄을 기다리며,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찾아가 봅니다.

 

부암동 길에서 시작한 그 길에는 윤동주 시인의 시가 알알이 적혀 있더군요.

걷는 길도 그리 길지 않았어요.

만약 그 길의 끝에 사색에 잠기신다면,

그 시간의 '길이' 조차 짐작하기 어렵겠지요.

 

 

 

 

 

오늘 제가 다녀온 곳은 부암동 '시인의 언덕'입니다.

2009년 7월 11일, 윤동주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청운공원에 세워진 비석이 있는 곳이죠.

윤동주 시인의 시에도 종종 등장하는, 인왕산 자락의 조용하고 생각하기 좋은 언덕길입니다.

 

서울시에서는 '동네 골목길 관광'이라고 해서 '걷기 좋은 길'을 추천하고 있는데요,

이 곳은 4코스에 속하는 부암동 길 중 하나입니다.

 

저는 부암동을 몹시 좋아하는데요,

조용하고 예쁜 카페가 많은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높이 올라갔을 때 내려다 보이는 다정한 골목길 풍경과,

옹기종기 모인 집들이 참 예뻐 보여서 그렇습니다.

 

 

 

 

지난 봄에 찾았던 이 곳의 풍경 역시 참 아름다웠죠.

살짝 흐린 날씨이긴 했지만, 윤동주 시인이 노래한 봄처럼

조금은 달콤하고 조금은 행복한,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리 애기는 아래 발치에서 코올코올,

고양이는 부뚜막에서 가릉가릉,

 

애기 바람이 나뭇가지에서 소올소올,

아저씨 햇님이 하늘 한가운데서 째앵째앵.

 

봄 – 윤동주 作

 

 

참 예쁜 시 아닌가요?

윤동주 시인의 시는 항상 먹먹하고 아픈 느낌으로 다가왔는데,

이렇게 오밀조밀 예쁜 시도 있었군요.

 

이 겨울이 가고, 봄이 올때면

이 시가 또 생각 날 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해 만큼이나, 올 겨울에도 눈은 참 많이 왔습니다.

집에서 보면 마냥 예쁜 눈인데, 막상 사박사박 밟아나갈라 치면, 참 무섭고 어려운 존재가 됩니다.

이 날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황토를 뿌려놓은 곳도 있었지만…이렇게 눈 덮인  길이 더 많았습니다.

조심조심 눈길을 걸어봅니다.

윤동주 시인의 표현이 또 하나 떠오르네요.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 …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길 2절부터 7절 – 윤동주 作

 



이 길을 걷다보면, 정말로 제가 잃은 것을 찾아낼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저 길을 홀로 걷고 계신 분도…자신이 잃은 것을 되찾으셨을까요?









지난 봄엔 시구절이 빼곡히 적혀있던 이 나무에 이젠 '詩'라는 글자만 크게 적혀 있습니다.

이 곳에 적혀있던 그 구절이 다시금 떠오릅니다.

새봄이 되면 이 곳은 또 어떻게 달라질까요..?



 

대궐 지붕 위에서 기왓장 내외

아름답던 옛날이 그리워선지

주름잡힌 얼굴을 어루만지며

물끄러미 하늘만 쳐다봅니다.

 

기왓장 내외 2절 – 윤동주 作





저도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 봅니다.

말라버린 단풍이 떨어지지도 않고 나무 끝에 슬프게 붙어있습니다.

눈이 금세라도 쏟아질 듯 흐리고 먹먹해진 하늘도 저를 내려다 봅니다.








봄에 보았던 옹기종기 다정했던 집들도 눈을 맞았습니다.

시리고 추운 겨울 하늘 아래 이상하게도 하얀 눈을 맞은 집들이 따뜻해보입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붙일까요?

 

편지 2절 – 윤동주 作





누나가 가신 나라에 눈이 오지 않아서 눈을 편지로 보낸다는 그 마음처럼..

따뜻함을 흠뻑 머금은 이 눈을, 저는 사진에 담아 가져갑니다.




 




왼 편이 지난 봄, 오른 편이 이번 겨울에 찍은 사진인데요,

'시인의 언덕'이란 문구와, 계단 하나하나에 새겨진 시 한 구절 한 구절이 흰 눈에 덮였네요.


그런데도 여전히 마음은 두근거립니다.

돌아오는 새 봄에도 다시 이 곳을 찾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 시를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봄은 다 가고-동경(東京)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게다.

-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사랑스런 추억 5절부터 8절  – 윤동주 作




제게는 청년으로 남아있는 윤동주 시인의 사랑스런 추억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봄에 다시 쓰게 될 것만 같은,

이곳에서의 여행기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Tip 1. 부암동 가는 길


검색포털에서 '빠른 길 찾기' 서비스를 이용하시면 편하고요,

저는 광화문에서 1020번 버스를 타고 이 곳에 내리는 교통편을 추천합니다.


부암동엔 '시인의 언덕' 말고도 명소들이 참 많은데요,

지난 번 Get About에 서울 성곽 순례길 리뷰를 올린 적이 있으니,

이 여행기도 참고하심 좋을 듯 싶네요!

=> http://getabout.hanatour.com/archives/11473



|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청운공원 ( 7022번, 7212번, 1020번 경유)

| 주변 볼 거리 :  드라마 촬영지, 창의문, 서울 성곽순례길 4구간 지점

| 관련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ilovedongju/




 

Tip 2. 자하 손만두


부암동 길이 좋은 건, 사람도 많지 않고,

언제든 들어가서 편히 쉴 수 있는 조용하고 따뜻한 맛집이 많기 때문입니다.


꽤 오래 전부터 커피로 유명했던 '클럽 에스프레소'부터,

작은 만두집을 연상케하는 '자하 손만두'까지.


오늘처럼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라떼도 좋지만

뜨끈한 국물이 일품인 만두국도 당기네요!







주소_ 서울 종로구 부암동 245-2

             부암동 동사무소 앞에 내려서 클럽 에스프레소에서 올라가다 보면 작은 간판이 보입니다.

             마치 가정집처럼 보이는 그 곳이 바로 '자하 손만두' 집이에요.

전화_ 02 379 2648

메뉴_만두국(10,000원) 만두전골(2人 35,000원) 빈대떡(7,000원)

홈페이지_ http://www.sonmandoo.com



리즈

보고, 듣고, 마시고, 먹고, 읽고, 느끼는 수동적인 즐거움을 몹시도 즐깁니다. 수동적인 즐거움을 만나기 위한 능동적인 그 어떤 행위도 좋아합니다. 이를테면 여행 같은 게 있을까요? 제가 만난 그 수동적인 즐거움을 함께 느껴보시죠..ㅎㅎ--------------------개인 Blog : http://blog.naver.com/godfkzp
글 더보기
댓글수(22) 트랙백수(0)
  1. 존정닷컴 2011-02-25 17:31:52

    급 만두 땡긴다는;;;

  2. 요즘같이 머리가 복잡한 날 머리를 식히기 위해 이곳 저곳을 찾아봤습니다.
    오늘 그 곳을 찾게 되었네요.
    복잡하지 않고 꽉 막히지도 않고 서정적인 경치를 감상하며
    혼자 길을 걸으며 생각할 수 있는 곳이네요.
    이 곳에서 우수를 느껴 보아야겠네요.

  3. 시인 윤동주님의 시가 제일먼저 눈에 들어오는건 왜일까요?
    참 좋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쏙~ 드는건…
    떡만두국?ㅎㅎㅎㅎㅎ 꼭 가보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