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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ve Actually, 유럽에서 만난 연인들

    프린 프린 201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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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서유럽
     
     
    유럽에서 만난 연인들




    유럽에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애정을 표현하는 연인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을 표현하고 싶을 땐, 언제나 행동에 옮기는 그들.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그리고 식당 한구석에서 얼마나 많은 속삭임과 입맞춤, 미소를 보았던가요. 그저 낭만적으로 보였기 때문에 그 장면들이 인상 싶었던 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감정이 움직이는 대로 행동하는 그들의 망설임 없는 의지가 부러웠던 것이죠.

     

    사진을 찍는다고 그들의 용기(?)가 제게 옮겨오지는 않겠지만, 두고두고 두근두근한 순간을 떠올리기 위해 몇 쌍의 연인을 향해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들의 모습이 ‘염장'이 되어 당신의 마음에도 불을 질렀으면 좋겠네요. 계속 함께 해 온 사람, 지금 당신 옆에 있는 사람, 앞으로 당신에게 올 그 사람을 위해서 말이죠.





     

    1. 대화 

     


     

     

    대화는 관계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언어와 몸짓을 날줄과 씨줄 삼아 대화라는 커다란 천을 짭니다. 그 따뜻한 피륙으로 우리의 어깨를 덮어 서로 간의 차갑고 삭막한 공기를 덥히는 셈이죠. 사람마다 직조하는 대화의 크기도, 밀도도 달라 몸과 마음에 맞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는다면 대화의 재료는 끊임없이 우리의 베틀에 물리게 됩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나와 그 사람에게만 꼭 맞는 사이즈를 찾을 수도 있겠죠.

     

    파리의 콩코르드 역에서 만난 이 두 사람도 그런 과정 중에 있었습니다. 평소보다 배차 간격이 길어진 늦은 시각. 두 사람 모두 모델처럼 훤칠한 키를 뽐내서 눈길을 끌었죠. 남자는 인내할 줄 아는 나무처럼 가만히 서 있었고 여자는 건들건들하지만 악의는 없는 몸짓으로 남자에게 다가갔다 멀어졌다를 반복했습니다. 여자는 얼핏 심각해 보였으나 툭툭 장난스럽게 남자를 건드리는 걸 보면 평소의 표정이 원래 그런 모양이었습니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당사자들만 알 수 있는 대화의 방식을 온전히 해독할 순 없는 노릇이지요. 특별한 관계의 사람들은 그들만 알 수 있는 언어와 제스처를 씁니다. 날줄과 씨줄로 대화의 천을 짠다면, 사랑이 그 천의 도안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두 사람을 덮고 있는 두툼한 담요가 어떤 색깔이고 어떤 문양이 새겨져 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저도 누군가와의 대화가, 우리에게만 꼭 맞는 대화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을 뿐입니다.

     

     

     
     
    2. 열정
     
     
     



     

    프라하의 흐라트차니 언덕 위엔 밤이 되면 보석처럼 빛나는 프라하 성이 있습니다. 프라하를 아름답게 만드는 원천이자, 사람들이 프라하를 사랑하는 이유이죠. 약간 고생스럽게 언덕을 오르면 볼 수 있는 시가지의 전경도 고성의 매력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 가서 보는 것보단 멀리서 바라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듯하지만, 프라하에 왔다면 꼭 한 번 올라가봐야 할 곳임엔 틀림없습니다.

     

    저와 제 여행의 동반자도 프라하 성의 내부를 모두 둘러보고 언덕 위에서 눈 덮인 시내를 감상했습니다. 저희가 걸어온 길이 적갈색 지붕 아래 숨어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당시는 여행의 막바지였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을 어디에든 사로잡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열정적인 두 분을 만났습니다. 시내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후문 앞 공터에서 말이죠. 두 사람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시내를 내려다보더니,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계획했다는 듯 키스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길었냐구요? 한 번은 놀라고, 한 번은 웃고, 한 번은 사진을 찍을까 말까 망설일 만큼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입맞춤은 계속 이어지더군요. 도대체 이곳이 어떤 의미이기에 그들의 입맞춤이 그렇게 길었던 걸까요. 주체할 수 없는 사랑 때문인지, 아니면 프라하 성에 얽힌 특별한 사연이 있기 때문인지, 사연을 알 길이 없는 저는 결국 카메라를 들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현상을 맡기고 받아보니 너무 적나라하게 찍힌 사진에 부담(?)스럽긴 했지만, 사랑한다면 이렇게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할 필요도 있겠지요. 열정, 사랑의 시동기관이자 연료로 말이죠. 







    3. 믿음

     

     



     

    사랑에 유통기한이란 말을 처음으로 썼던 영화가 스크린에 걸린 지 15년이 넘었고 누군가는 화학적으로 그 기한이 2년 남짓 된다고 주장했지만, 아직도 사랑이 얼마나 지속되는지에 대한 해답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사랑은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다가도 한여름 식탁 위에 방치한 음식처럼 쉽게 변질되고는 합니다. 세월의 무자비한 힘 앞에서 인간의 감정은 그저 짧은 낙서에 불과할지 모르죠. 

     

    그러나 그런 비관적인 생각을 멎게 하는 장면들도 있습니다. 서로 같은 곳을 응시하지 않아도 함께 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관계처럼 말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사랑보다 더 두터운 미덕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월에 따라 타올랐다 사그라지기를 반복하지 않고, 세월에도 불구하고 지켜질 때 그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가치. 우리는 그걸 믿음이라고 합니다.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나는 그걸 만 년으로 하고 싶다." 영화 속 주인공의 바람을 이루고 싶다면, 그 답은 바로 저 두 분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 재회
     
     
     



     

    플랫폼에 발을 딛는 순간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고개를 들자 감탄이 나오더군요. 빈에서 타고 온 열차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연착이 되는 바람에 예정보다 늦게 프라하의 중앙역에 도착했을 때였습니다. 이미 해는 졌고, 시간을 뭉텅이로 날려먹었다는 생각에 초조의 늪에 빠진 상태였죠. 그런데 플랫폼 위의 그들 앞에선 저의 불안도 볼을 붉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굳이 옛 드라마의 제목을 꺼낼 필요도 없이 그들은 우리를 영화의 한 장면으로 이끌었습니다. 기차역의 구석구석까지 낭만적인 빛깔로 물들이겠노라 작정이라도 한 모양이었습니다.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재회의 키스일까, 아니면 이별의 키스일까. 보통 이별의 키스가 더 애틋할 거라고 생각하며 내심 그것이길 바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보고 있자 이 순간이 재회의 순간일 때 더 아름다우리란 걸 알게 됐습니다. 비로소 만났다는 안도와 감사,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던 사랑을 이제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다는 해방감. 격한 감정은 천천히 말랑말랑해지며 온 몸과 마음에 행복감으로 스며들겠지요. 그러면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그들의 보금자리로 함께 돌아갈 것입니다. 그동안 쌓아두었던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이 모든 것이 상상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이 나란히 역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며 저는 알게 됐습니다. 두 사람이 나눈 건 진짜 재회의 키스였다는 것을.




    프린

    글과 사진과 커피를 좋아하는 초보 여행자. 전문적이진 못해서 그냥 주섬주섬 써내려가기만 합니다. 화려한 환상보단 솔직한 감상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D http://princi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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