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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과 함께 걷는 여행 - 삿포로 여인숙

    cookybox cookybox 2011.04.20

    카테고리

    일본, 홋카이도

     

     

    문학과 함께 걷는 여행

     

    삿포로 Sapporo

     

     

     

    문학과 함께 걷는 여행, 오늘은 하성란 작가의 장편소설 <삿뽀로 여인숙>과 함께 여행을 떠나볼까 합니다. 근래 일본에선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11년 전 가을에 샀던 이 책을 다시 떠올렸던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기적을 믿기 때문이 아닐까...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희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시작되는 사랑,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인생.

     

     

    그런 믿음이 지금 일본에는 필요하고, 또 필요로 하기 이전에 몸으로 체득하며, 그들은 그렇게 오늘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겠지요. 

     

     

     

     

    <하성란, 삿뽀로 여인숙>

     

     

     

    하성란의 소설 <삿뽀로 여인숙> 속 주인공 '진명'에게도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닐까 싶은데요, 이 소설엔 3분 차이로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 '선명'과 '진명'이 등장합니다.  선명은 남동생이고 진명은 누나죠. 둘은 여느 남매처럼 다투기도 하고 화해도 하고, 둘만의 비밀을 만들기도 하면서 자라납니다. 어느날 트럭이 인도 위로 돌진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10톤 트럭 운전사는 졸음 운전 탓이었는지, 가로수를 뿌리째 뽑을 정도의 힘으로 인도로 돌진했고, 동생 선명은 그 자리에서 즉사합니다. 누나 진명이 '다행히도 즉사했다'고 표현할 만큼 동생의 죽음은 끔찍했습니다. 10톤 트럭의 위력은.... 너무나 컸을테니까요. 동생이 살아남았다 해도 평생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갈 순 없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고현장에서 선명의 왼쪽 귀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가을부터 진명의 왼쪽 귀에선 이명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이국의 언어가, 그것도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어느날 일본인 남편을 둔 동네의 독특한 아이 엄마에게서 그 이국어의 정체를 알아내게 됩니다.

     

    "와따시노 나마에와 고스케데스."

    "내 이름은 고스케입니다."

     

     

    진명은 그때부터 교복을 입은 남학생의 환영을 보기 시작하죠. 또, 환영으로만 보이는 고스케의 출연으로 진명은 일본, 그것도 삿포로에 가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런 결심을 하게 된 배경에는 대학 대신 사무보조원으로 취직한 한 사무실에서 만난 '김정인'이란 남자도 있었죠.

     

    단 둘이 시외로 가게 된 어느날 오후, 작은 카페에서 일본 노래를 듣게 되었던 겁니다. 그 카페 사장은 '일본에 있을 때 들었던 노래'라고 하면서 피아노를 치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한 곡조 불렀는데... 바로 그 곡조가 고스케가 진명의 왼쪽 귀로 불러대던 휘파람 소리와 비슷했던 것이죠.

     

    사실 이 장면은 하성란 작가가 실제로 겪었던 일이라 합니다. 자신이 한 카페에 들어갔다가 왠지 쓸쓸한 일본 노래 한곡을 들었는데, 노래 제목이 바로 '삿뽀로 여인숙'이었답니다. 그런데 정작 주변 일본인 중엔 그 노래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그때부터 <삿뽀로 여인숙>이란 작품을 쓰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작가가 쓴 책의 머리말을 보면, 그 과정과 함께 가장 먼저 '삿뽀로 여인숙을 찾아가는 길'도 나와있죠. (삿뽀로 여행을 자주 다니셨던 분이라면 지도를 펼쳐놓고 그 위치를 한번 찾아보세요...! 물론 11년 전에 출간된 책임을 감안하셔야 해요.)

     

     

     

     

     

    삿포로 전차 (사진출처: Flickr ⓒ mochi)

     

     

    재작년 동부 이촌동의 '들마'라는 카페에서 <삿뽀로 여인숙>이라는 노래를 들었다. 단조롭고 별 특색 없는 노래였지만 육십을 넘긴 들마의 주인은 조율이 되지 않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가사를 알기 위해 다시 그곳을 찾았지만 그 사이 들마는 다른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노래를 알고 있는 그 주인의 행방도 알 길이 없었다. 일본에 사는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한참 후에 되돌아온 대답은 일본에 사는 누구도 그 노래를 알지 못한다는 거였다. 일본에는 여인숙이라는 단어도 없었다. (중략)

     

    삿뽀로 여인숙은 삿뽀로 시 중앙구 남5조 서9정목에 있다. JR 삿뽀로 역에는 여러 개의 출구가 있는데 남쪽 소고 백화점 쪽으로 나오면 된다. 광장 앞으로 낯선 여러개의 길들이 펼쳐져 있지만 당황할 필요 없다. 마음에 드는 길을 골라 잡아 무조건 걷기 시작하자.

     

    구북해도청까지는 걸어서 10여분. 거기서 다시 시계탑까지는 5분여가 소요된다. 붉은 벽돌 건물의 웅장한 구북해도청과는 달리 잎이 무성한 가로수에 묻혀 있을 뿐만 아니라 삿뽀로가 초행이고 다소 마음이 들떠 화려하고 높은 건물만 찾다보면 시계탑은 놓치기 십상이다. 삿뽀로에서 가장 높은 탑을 찾아내 시계탑이라고 소리치지만 그것은 대부분 시계탑이 아닌 TV 탑이다. TV 탑이 앉은 곳은 가로수가 아름답다는 오도리코엔이다. (중략)

     

    24시간 편의점을 지나면 고급 덮밥집이 나오고 세탁소가 나온다. 세탁소를 끼고 골목길로 들어가면 이층집들이 나란히 줄서 있는 조용한 동네가 나타난다. 그곳에 삿뽀로 여인숙이 있다. 남쪽 가로줄의 다섯버내 줄과 세로줄의 아홉번째 줄이 만나는 곳. 남5조 서9정목. 다 왔지만 그곳은 빈터일 뿐이다. 검정 소형 승용차가 비스듬히 주차되어 있다.  [본문 7페이지. 작가의 말]

     

    작가 하성란은 삿뽀로에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고 합니다. 동부이촌동 한 카페에서 '삿뽀로 여인숙'이라는 노래를 듣기 전까지는요. 삿뽀로 여인숙이라는 그 묘한 울림이 아무래도 작가의 가슴에는 오래도록 파문을 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치 무언가가 있을 것처럼 그곳을 향해 떠납니다. 그리고 선명과 진명, 그리움...과 같은 이야기를 담아왔죠.

     

     

     

     

     

    오오도리 공원의 시계탑  (사진출처: Flickr ⓒ fangchun15)

     

     

     

    소설 속 진명은 일본행을 결심하고, 진명이란 캐릭터엔 작가 하성란의 모습이 투영돼, 진명은 작가가 보고 느꼈음직한 삿포로 곳곳을 탐방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수수께기 같은 인연과 공간을 스치게 되는 것이죠.

     

    삿뽀로까지 JR특급을 탔다. 내가 손에 든 일본 관광 책자에 의하면 나는 45분 뒤 삿뽀로 역에 서 있을 수 있었다.  미나미 치토세 역에서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방금 기차에서 내렸다. 키는 173cm미터쯤에 갓 서른이 넘었을까. [본문 238페이지]

     

    삿뽀로라는 지명은 이곳의 원주민이었던 아이누족의 말로 '오랫동안 메마른 강바닥'이라는 뜻이었다. 여행 안내 책자는 몇달전부터 숙지했으므로 펼쳐볼 필요도 없었다. 책자의 도보 관광 코스에는 삿뽀로 역, 홋카이도 대학, 식물원, 구북해도청, 시계탑 순으로 나와 있었다. 책자에 의하면 삿뽀로 역에서 시계탑까지는 도보로 약 37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메마른 강바닥에 한 발을 내딛었다. [본문 240페이지]

     

     

     

    겨울의 구 북해도청

     

     

     

    진명은 낯선 일본 여행길에서, 선명의 여자친구로 오랫동은 그를 잊지 못한 채 살아가던 '미래'를 닮은 한 일본 여자도 따라가게 됩니다.

     

     "잡았다. 나 못속인다. 윤미래."

    숱이 풍성한 검은 머리카락이 어깨 위로 쏟아졌다. 양손으로 머리를 잡은 여자가 놀란 얼굴로 뒤돌아보았다. 윤미래가 아니었다.  

     

    "이런, 미안합니다."

    당황해서 모국어가 튀어나왔다. 눈과 코, 입이 중앙으로 몰린 전형적인 일본 여자가 내 손에 들린 모자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제가 아는 사람인줄 알았어요. 뒷모습이 너무 닮아서." 

    다행히 그 여자는 영어를 할줄 알았다. 

     

    "제 탓입니다. 누굴 닮았다는 이야길 종종 들어왔어요. 세상에는 똑같이 생긴 사람이 둘 있다잖아요?"  

    빨간모자가 재빨리 내 행색을 훑어보았다.

     

    "여행을 오셨나요. 그럼 절 따라오신게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제가 알고 있는 여관 가운데 이 여관이 가장 쾌적하죠. 방값도 유스호스텔 다음으로 저렴할 겁니다. 이제 제 모자를 주시겠어요?"

     

    [본문 242 페이지]

     

     

     

     

     

    홋카이도 대학 건물 중 하나

     

     

     

    결국 수수께기의 해답은 진명이 만나고 지나쳐온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속에 마치 조각그림처럼 흩어져 있었습니다.그 모든 만남이 진명이 삿뽀로 여인숙으로 가는 길 골목골목에 숨어 있던 셈이었죠. 어쩌면 인생이란...그런 파편과도 같은 우연과 인연의 연속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 우리에게 '여행'이란 것도...계획되기보다는 갑자기 어느 한 가지에 마음이 쏠려서...그곳이 아니면 왠지 안 될 것 같아서...늘 마음 한구석을 비워두고 언제든 떠날 채비를 하게 되는 그런 우연의 순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러고보면 결국 이 이야기는 10년에 걸친 '주인공의 방황'을 그리고 있는 동시에, 쉼 없이 방황하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바치는 소설이며, 삿포로를 여행하며 떠올린 하나의 우연 같은 단상이 될 수도 있겠네요.

     

    문득 또 한번 삿뽀로를 향해 떠나고 싶어집니다. 사계절 내내 축제가 벌어지는 오오도리 공원으로, 자연이 아름다운 후라노와 비에이로 말이죠...

     

     

     

    [관련 글] 문학과 함께 걷는 여행 - 하코다테 편 

     

     

     

     

    cookybox

    통장에 잔고만 있다면 어느새 여행사이트를 들여다보면서 비행기 값을 가격비교 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어떤 시인은 "사랑은 나의 권력"이라고도 한다지만, 혼자인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여행은 나의 권력"이라는 문장을 만들어내고 혼자 흐뭇해 합니다. 암만, 여행은 경험과 추억의 절대적 권력이고 말고. 물론 여행길에 책은 필수옵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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