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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날의 문화여행, 간송미술관 - 국내 최대 사군자 대전

    홍대고양이 홍대고양이 2011.05.15

    카테고리

    한국, 서울, 예술/문화

     

     

     

     

     

    어떤 일은 꼭 누군가 특정 사람과만 하고 싶은 게 있지요.

    말하지 않았어도 암묵적으로 둘이, 우리 둘만의 약속으로 이어가는.

    제게 손꼽아 기다리면서 함께 하는 매년의 나들이가 있는데, 바로 봄날 간송미술관 나들이입니다.

     

     

     

     

     

     

     

    저의 그가 양갈래머리 소녀라고 부르는 금낭화가 곱게 피어나면,

    간송미술관이 문을 엽니다. 봄 가을 딱 보름만 문여는.


     

     

     

     

     

     

     

    시인 김영랑이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라 했지요. 

    저는 간송이 문열기 까지, 봄을, 5월을 기다리고 있다고나 할까요.

     

    피에르 상쏘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란 책에서,

    5월이면, 목로주점이 문을 열어 봄을 연다고 했었습니다.

    그 목로주점에 들르지 않으면 봄맞이하지 못한 것 같다면서요.

     

    제게 목로주점은 간송. 봄이면 참새가 방앗간 문 열기 기다리듯 간송을 기다립니다.  

    제 연인과의 만남이 이어지듯, 간송과의 만남도 해 넘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 미술품의 아버지, 간송 전형필 선생

     

      

     

     

     

     

    간송 전형필 선생. 전형필 선생의 호 간송.

     산골물 澗 간에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알 수 있다는 소나무 松

     

     간송은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곳의 늘 푸른 소나무의 뜻.

    일제시대에 꿋꿋히 문화재를 지킨 삶에 걸맞는 호지요.

     

    훈민정음이나 동국정운 같은 교과서에서 배웠던 원본을 지킨 분. 

    일제시대 때 간송 전형필 선생. 전재산을 털어 우리나라 문화재를 사들여 보수하면서

    우리 문화재 유출을 막기 위해 애를 쓰셨던 분입니다. 총칼을 들지 않았지만 예술의 애국자입니다.

     

     

      

     

     

     

     

    한국 미술품의 보물창고, 간송미술관

     

     

      

     

     

     

    전형필 선생이 수집한 소중한 문화재를 관리하고

    봄가을 전시하는 곳이 바로 간송미술관입니다.

     

    간송미술관 건물의 처음 이름은 보화각이었습니다.

    빛나는 보배를 모아두는 집이라는 의미에서 오세창 선생이 지었지요. 

     오세창 선생은 한용운의 집 심우장 현판을 쓴 사람이며

     간송을 문화재 수집의 길로 이끈 분이시기도 합니다.

     

    간송이 성북동에 미술관 터를 구입한 것은 1933년 봄. 나이 28세 때의 일이죠.

    보화각은 간송 전형필 선생이 지은 우리나라 최초 근대식 사립박물관이랍니다.

     

     우리나라 최초 근대 건축가 박길룡이 간결하고 단순하게,

    모던하게 설계하여 건물 자체만으로도 역사적이랍니다.

      

     

     

    보화각에 대한 오세창 선생의 주춧돌엔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무인년 1938년 윤 7월 5일에 전형필 전군의 보화각 상량식이 끝났다.

    내가 북받치는 기쁨을 이기지 못해 이에 명을 지어 축하한다.

    우뚝 솟아 화려하니, 북곽을 굽어본다. 만품이 뒤섞이어, 새집을 채웠구나.

     서화 심히 아름답고, 옛 골동품은 자랑할 만하다.

    이곳에 모인 것들, 천추의 정화로다. 근역의 남은 주교로, 고구 검토할 수 있네.

    세상 함께 보배하고, 자손 길이 보존 하세. - 출처 : 책, 간송전형필 "-

     

     

    간송 전형필 선생이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표상이 될만한 인생을 사시면서

    수집한 보물들이 모인 곳으로 봄 가을에 무료로 그 보물들을 일반에 공개하고 있으니,

    아니 가볼 수 없습니다. 전시 첫날 아침, 달려갔습니다. 이번엔 무얼까 하면서요.

     

     

     

     

     

     

     

    국내 최대 사군자 대전

     

     

     

     

     

    올 봄엔 전시 40주년 기념 간송미술관 사군자 대전이 열렸습니다.

    사군자.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는 사람을 군자라 하지요.

    그 군자들이 몇 백년의 시간의 위난危難 속에서도 살아남아 오늘 눈앞에 섰습니다. 

     

     

     

     

     

     

    梅蘭菊竹 매난국죽

     

    그림은 하나의 매개입니다. 사상을 투영해낸 하나의 은유.

    조선시대 선비들의 곧은 절개와 정신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들.

     

    이번 사군자 전시는 국내 사군자 전시 중 최대 규모로 100여점을 전시합니다.

    시기는 임진왜란 이후 작품들로, 탄은 이정, 수운 유덕장, 추사 김정희를 비롯해

    어몽룡, 심사정, 강세황, 이하응, 최북, 김홍도 등의 내로라하는 작품들도 볼 수 있답니다.

     

     

     

      

     

     

     

    뼈마디 곧은 대나무

     

     

     

     

     

    유덕장 통죽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겠다는 대나무의 곧은 충정.

    대나무의 시원시원한 선이, 곧은 뼈마디가 족자에 가득합니다.

     

     

     

     

     

     

    김진우 묵죽

     

     

    바람을 타는 풍죽, 태어나는 죽순이 담긴 순죽,

    다 자란 성죽, 늙은 대나무들인 통죽. 

     배어날 듯한 대나무가 빼곡히 보입니다.

     

     바람을 타는 풍죽, 태어나는 죽순이 담긴 순죽,

    다 자란 성죽, 늙은 대나무들인 통죽.

    오늘의 간송의 벽은 바람 소리가 잎 사이로

     

     

     

     

     

    이정 풍죽

     

     

    한 떼의 물찬 제비가 파드득 바람결을 따라 나는 듯한 탄은 이정의 풍죽風竹.

    묵죽 명인으로 꼽히는 이정이 그린 명작 중의 명작입니다.

    바람을, 여실하게 기록하는 대나무의 진수입니다.

     

    이정은 세종의 고손이기도 하지요.

    촥촥 뻗은 대의 선을 따라 멋스러운 풍류와 함께 선비의 정신도 흐릅니다

     

     

     

     

     

    유덕장 설죽

     

     

    유덕장의 설죽은 독특합니다. 푸르스름한 잎사귀가 흰 눈을 고이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세세하게 그리고 치밀하게 표현한 것은 진경산수의 영향으로 볼 수 있으며

    먹의 농담만으로 표현해 낸 그림들 사이에 녹색 색채는 눈길을 잡아 끌었습니다. 

     

    볼 때마다 감탄하는 고서화의 매력적인 표현은, 칠하지 않음으로써 표현하는 것입니다.

     소담하니 쌓인 눈, 휘영청 밝은 달. 칠하여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 밖을 칠하여 거꾸로 그 존재를 담아냅니다.

     

    비워낸 곳을 우리는 흰빛을 띤 그 무엇으로 채워서 바라보게 되지요. 

    없는 것을 있도록 상상하게 만드는 표현, 탁월하지 않나요? ^^

     

     

     

     

     

     

     

     

    소담스런 국화

     

     

     

     

     

    심사정 오상고절

     

     
    가득한 대나무 족자 사이로 국화꽃은 드물게 피어있습니다.

    국화가 사군자 중 가장 마지막으로 '군자'대접을 받았기 때문이죠.

    눈여겨 볼 국화는 심사정의 작품. 가장 오래된 국화작품으로 추정된답니다.

     

    서리를 이겨내는 외로운 절개. 세상이 평온하다면 극기할 고통도 고민도 없을 텐데.

    왜란, 호란 등 격변의 시절을 겪으며 그 사이에 자신의 정체성과 본분을 지키려 했던 선비들.

    이기기 힘든 것을 이겨내는 괴로움을 한장의 그림으로 담담하게 비유하며

     그 시간을 묵묵히 견뎌냈던 것이 아닐까요.

     

     

     

     

     

     

     

     

    절개와 기개의 매화

     

     

     

     

     

    심사정 매월만정

       

     

    달은 채워지지 않았기에 맑게 드러나 휘영청 빛을 뿌리고 있습니다.  

    심사정의 매월만정. 매화의 가지는 격한 선을 드러내며 밤공기를 뚫고 지나고

    반대로 곱고 보드라운 매화 꽃잎이 하롱하롱 곧 떨굴 듯 만개하였습니다.

     만월. 만개. 가득찬 밤. 월하정인이라도 만나고 싶은 그런 밤 ^^

     

     

     

     

     

    김홍도 백매

     

      

    난의 매력이라하면 낭창하게 쳐낸 잎.

    심사정의 작품도 좋았지만 단연 오늘의 최고는 김홍도의 백매. 白梅 

    함께 온 그의 탄성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다 돌아보고 마지막에 보았습니다.

     

    절정의 그림을 보고 나면 나머지의 그림들이 시들하게 다가오니,

    감흥이 물결처럼 이는 작품일수록 아꼈다가 나중에 보고 싶어서요.

     

    연한 회색이 가득 채워진 가운데 거칠게 휘어진 매화나무.

    탁탁 팝콘 터져나오듯 가득한 여느 매화꽃들과는 달리

    망울망울 점점이, 흰 점이 수줍게 가지에 달렸습니다.

    아직은 꽃피지 않아 담담하게 절제한 느낌입니다.

     

    연회색에 흰 점이 마치 눈이라도 내린 듯 몽환적이며

    달이며 새, 바위들도 과하게 채우지 않아서 여백의 미가 탁월합니다.

    풍속화가 김홍도지만 역시 김홍도- 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게 만들었죠.

    문인들처럼 사군자를 그리며 자신도 문사라, 정체성을 확인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어몽룡의 매화는 이른 봄의 꽃으로 강직함을 품어내고 있고

    마디마디 꺾어진 매화 가지마다 꼬장꼬장한 선비 기상이 담겨있습니다.

    어몽룡의 묵매. 5만원권에서도 볼 수 있으니 살짝, 꺼내서 비교해보세요 :)

     

     

     

     

     

     

    유려한 선의 난초

     

     

     

     

     

    김응원 석란

     

     

    살짝 고개를 숙인 듯 길게 뻗은 여인의 목덜미의 우아한 선 닮은 잎.

    조금은 흐려지는 꽃, 아마 그 흐림을 향이 채워내고 있을, 날개 뻗은 꽃.

     

    전 어릴 때 사군자 칠 때 난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난초. 매력적으로 쭉 뻗은 선을 따라 시선도 이어집니다.

    두 개의 날렵하게 뽑아낸 잎으로 봉황의 눈, 봉안을 그려 내고

    슥- 속도감 있게 또 하나의 긴 선을 지어내어 봉안을 깨어 파봉하지요. 

     

    먹에 물을 풀어 하나, 둘, 셋, 넷, 고만고만한 공간에 난꽃을 피워냅니다.

    가는 꽃대에 어슷하게 꽃을 피워내고 꽃대 끝에 갈수록 벌어지지 않은, 봉우리.

    여기에 짙게 갈아낸 먹을 다시 뭍혀 꽃술을 탁탁탁 가볍고 빠르게 찍어냈더랬죠.

     

     

     

     

     

     

    김정희 산상난화

     

      

     

     

     

     추사 김정희의 산상난화 山上蘭花를 보면 글과 낙관,  

     그림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글은 의미 이전에 이미지로 다가오기 때문에 전체가 멋진 타이포그라피 같습니다.

     

     

     

     

     

     

    민영익 묵란

     

     

     
    매력적인 난이 많았습니다. 명성황후 친정 조카였던 민영익의 난초가 인상깊었어요.

    애국자 민영익은 운미란이라는 고유한 묵란화를 개척했습니다.

    비교적 큰 크기의 시원한 그의 작품을 만끽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하응 묵란

     

     

      

    저에게 오늘 이하응의 난초는 난초 중 단연 최고였습니다.

     크지는 않지만 작은 그림 속에 너무나 유려하게 뻗은 난초의 잎.

    먹의 농담이 변화함을 고스란히 담아낸 동양난의 우아한 자태.

    추사의 난그림과 서체를 본땄다니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죠.

     

     

     

     

     

     

     

     

    화려함 속의 사군자

      

     

     

     

     

    이정 우죽

     

      

    검은 비단, 금가루. 화려함이 돋보이는 검은 비단에 그린 사군자가 눈길을 끕니다. 

    탄은 이정의 우죽雨竹이 있고 까투리그림이 최고인 최북의 국화도 금빛을 뽐냈죠.

     

    담백한 흑백의 농담도 매력적이지만 검은 밤빛깔의 바탕에 노란빛 머금은 찬란한 군자.

    마치 밤기운 가득한 어두운 시절에도 고고하게 빛나는 그들의 절개와 이상을 맛보는 듯!

     

     

     

     

     

     

     

    함께 하는 봄나들이의 즐거움

     

     

     

     

     

     

     

     

     

    나오는 길, 제 눈에 마지막으로 대나무가 담깁니다.

    탄은 이정의 대나무. 그 말대로 바람이 좋아서일까. 대나무가 좋습니다.

    흰 여백 사이로 바람이 스쳐지나간 검은 흐름이 가득하게 흔들리는. 

    몇 백 년 전 누군가의 눈앞을 지나간 바람이 오늘 제 앞을 지납니다.

     

     

     

     

     

     

     

    그의 눈에는 마지막으로 황매화가 담깁니다.

    김홍도의 매화. 굽이진 가지 사이로 수줍게 맺힌 망울이 좋은.

    아직 절정을 향해 피지 않아서 만개한 순간을 그리며 보게 만드는.

    몇 백 년 전 누군가도 눈앞에 피지 않은 꽃을 보며 내일 필 꽃을 그렸겠지요.

     

     

     

     

     

     

     

    간송 미술관에서 돌아오는 길, 

    인근 집앞 주인이 가꾼 청보리가 파랗게 익어가는-

    한낮은 여름이고 아침저녁은 가을 색채의 묘한 날씨,


    바람 한 점에 마음까지 날릴 만큼 기분 좋은 날씨가 이어지는 딱 고맘때의 봄나들이.

    푸르른 기운이 가득한 봄나들이 입니다.

     

     

     

     

     

    몇 백년 전에 누군가의 손끝에서 태어난 그림을

    현재에 만난다는 것, 그들의 뜻을 느껴본다는 것.

    매력적인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단 보름의 시간! 놓치지 마세요.

     

     

     

     

     

    전시일정  

     

     

     

     

    - 일시 : 2011.05.15 ~ 2011.05.29 

    - 전화 : 02-762-0442 / 관람료 : 무료

    - 주소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97-1, 성북 초교 옆  

             (4호선 한성대입구역 도보 15~20분,  한성대 입구 6번 출구에서 마을버스)

             간송, 심우장, 길상사, 수연산방 등을 한번에 돌아도 좋다.

    - 내용참조 /그림출처 : 간송미술관 뉴스, 간송미술관 전시도록

    - 간송 정보 출처 : 책 "간송 전형필" 

      

     

     

    홍대고양이

    동아사이언스 과학기자, 웹진과학전문기자, 아트센터 객원기자, 경기여행지식인단으로 활동. 지금 하나투어 겟어바웃의 글짓는 여행자이자 소믈리에로 막걸리 빚는 술사랑 여행자. 손그림, 사진, 글로 여행지의 낭만 정보를 전하는 감성 여행자. http://mahastha.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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