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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화 속 이야기가 있는 '베네치아 팔레트'로 오세요!

    밤비행이 좋아 밤비행이 좋아 2019.09.12

    카테고리

    서유럽, 휴양, 풍경, 여름

     색깔 가득한 베네치아 
    동화 속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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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름 자타공인 날씨 요정인 덕에 어느 도시를 가든 내리던 비를 그치게 만드는 능력을 갖고 있다. 온종일 먹구름 가득 비 소식이 이어지던 베니스 국제공항에 내가 탄 비행기가 착륙하자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남들에겐 낭만으로 가득 찬 도시 베니스지만 나에게는 무시무시한 곳으로 각인돼 있던 탓에 파란 하늘이 펼쳐져도 감흥이 덜 했다. 오버투어리즘으로 고통받는 도시, 영화 인페르노의 재앙이 덮친 곳, 지구 온난화로 곧 사라질 도시 등. 이야기만 들어도 무시무시하다. 글로 접한 도시 기행이란 종종 왜곡과 부정으로 가득 차곤 한다. 특히 베니스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은 곤돌라와 베니스의 상인이 전부였기 때문에 미디어 속 부정의 이미지가 차지하는 공간이 월등히 컸다.


    부라노 섬
    수채화 물감이 펼쳐져 있는 곳

    베니스에서는 작은 배가 버스고 택시고 지하철이다. 여행자 입장에서는 편하고 빠르게 이동하면서 관광도 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부라노 섬에 가기 위해서는 한차례 환승을 해야 하는데 일단 Ferrovia B 정류장(선착장)에서 5.2번 배를 타야 한다. 여행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모르겠다 싶으면 그냥 줄이 가장 긴 곳으로 가서 배를 기다리다가 우르르 따라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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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가 버스, 지하철 대신인 베니스

    각 정류장(선착장)마다 밧줄을 던져 부둣가에 단단히 배를 대고 잠시 멈춰 선다. 사람들이 내리고, 타고 다시 출발하는 배. 처음엔 도무지 익숙하지 않은 이 새로운 대중교통수단이 몇 차례 타보니 언제나 배로 이동했다는 듯이 익숙해졌다. 베니스 본 섬에서 출발한 5.2번 배는 중간에 4개의 정류장(선착장)을 거쳐 F.te Nove에 도착했다. 환승할 타이밍이었다. 역시나 다른 여행자들과 우르르 함께 내려 12번 배로 갈아타면 된다.

    환승시스템이 어찌나 잘 되어 있는지 이탈리아어를 몰라도 번호만 보고 찾아다니면 헷갈릴 일이 없다. 오랜만에 맞는 바닷바람과 바다내음에 기분이 좋아졌다. 시속 20km로 전진하는 배 갑판으로 나와 햇빛과 바람을 동시에 흡수하면 홍삼정보다 더한 효과가 나타난다. 내가 이곳에 반나절을 머물든 하루를 머물든, 다음날 비행이 하나 있던 두 개가 있든 간에 다 잊어버리고 온전히 행복한 여행자 모드의 스위치가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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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과 섬 사이의 복잡한 바닷길을 돌아다니는 배 덕분에 지루할 새가 없었다. 이쪽엔 나무로 뒤덮인 외딴섬 같은 게 있고 저쪽에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아기자기한 집들이 나란히 서있었다. 넋을 놓고 지나가는 풍경을 보다 보니 어느새 부라노 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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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라노 섬은 팔레트 같은 곳이다. 섬 입구에서부터 아기자기한 집들이 쪼르륵 서 있는데 신기하게도 겹치는 색깔이 없다. 근거리에 붙어 있는 집들은 전부 팔레트에 짜 놓은 수채화 물감처럼 다 다르다. 파란 하늘과 쨍한 햇살 덕분에 어디서 찍든 인생샷이 나온다. 느긋하게 산책하면서 이곳저곳 돌아봤다.

    시간 걱정에 다급하게 돌아다닐 필요도 없고 앞사람을 따라 무조건 직진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그냥 마음에 드는 색깔을 따라 골목길로 깊숙이 들어가 보자. 종종 누군가의 집일지도 모를 담벼락 색깔에 반해 한참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다 보면 집주인 할머니가 빼꼼 고개를 내밀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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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라노 섬은 유리공예와 레이스가 유명한 곳이다. 섬에 있는 가게의 2/3가 유리 공예점과 스카프를 판매하는 상점들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하얀 레이스로 만든 원피스와 스카프가 살랑이는데 괜히 내 가슴이 선덕거렸다. 혹시라도 햇볕이 유리 공예점의 좌판대로 흐를 때면 작은 유리구슬이 그 빛을 반사해 지나가는 사람을 홀려버린다. 그리고 지갑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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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이스가 유명한 부라노에서는 곳곳에서 나부끼는 스카프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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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라노섬의 특산물 유리공예

    ​어디서 찍든 인생샷이 나오는 이곳 부라노에서도 제일은 운하가 흐르는 다리 위다. 운하라기에는 너무 작아서 시냇가 같은 느낌이지만 이쪽과 저쪽을 연결해 주는 다리 위에 올라 알록달록한 집들과 파란 하늘을 카메라 렌즈에 담아보면 디즈니 동화 속에 나오는 마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신기하게도 이곳은 관광지로 알려진 만큼 레스토랑이나 카페가 많은 편이 아니다. 특히 관광객을 대상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해가 지기도 전에 문을 닫기 때문에 섬 전체가 더욱 한가로운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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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그냥 눈에 띄는 가게 아무 데나 들어가려 했는데 ‘그래도…’가 마음 한 구석에서 손을 들고 일어섰다. ​그래도 분위기가 중요하잖아. 넓게 트여있는 광장보다는 아늑한 느낌이 드는 곳이 좋은데.

    ​결국 ‘그래도…’에 승복해 골목으로 파고 들어갔다. 조금 더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레스토랑의 한 자리 남은 야외석에 자리를 잡았다. 샹그리아와 해산물 튀김 그리고 이탈리아인들이 사랑하는 에스프레소를 파는 여느 평범한 레스토랑이었다. 사실 부라노 섬에 있는 대부분의 레스토랑은 해산물 튀김과 샹그리아 혹은 스피릿 등 시원한 알코올 음료를 팔고 있다. 다만, 그런 게 있지 않은가. 똑같은 메뉴를 팔아도 콕 찍은 듯 내 마음에 쏙 드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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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 차양 아래 달콤 쌉쌀한 샹그리아 한 잔과 짭조름한 해산물 튀김을 하나씩 집어먹으면서 맞은편 레이스 가게의 흰 스카프가 휘날리는 장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 가게 주인은 주문한 샹그리아가 나올 무렵부터 서서히 문 닫을 준비를 하더니 해산물 튀김이 나올 즈음 가게 문을 닫고서는 곧바로 내가 앉아있는 곳으로 건너왔다. 오자마자 내 옆 테이블 멋쟁이 할머니 세 분이 앉아있던 곳으로 반갑게 인사하며 합석하는 것이 아닌가. 

    샹그리아에 들어있는 과일을 이쑤시개로 콕 찍어 먹으며 거리를 관찰하다 보니 이곳은 온통 멋쟁이뿐이었다. 우아한 원피스에 손목에는 시계를 차고 한 손에는 백을 들고 선글라스로 패션을 완성한 멋쟁이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에스프레소 한 잔을 즐기며 지나가는 모든 이에게 ‘챠오’하고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지나가는 모든 마을 주민과 반갑게 인사를 하며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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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 차양 사이 언뜻 파란 하늘이 보였고 뭉게구름 조각이 걸려있었다. 적당한 바람과 온도 그리고 시원한 보랏빛 샹그리아까지 온갖 색깔의 향연이었다. 샹그리아에 든 오렌지 조각의 껍질까지 씹어 먹으며 미적거리다가 마지막으로 부라노를 눈에 담으며 걷는데 다리 넘어 맞은편 가게가 유난히 북적거리는 게 보였다.

    또 안 가볼 수가 없지. 그곳은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운영하고 계신 작고 소박한 과자가게였다. 유리장 안과 선반 위에 과자가 쌓여있고 원하는 과자를 그램 수대로 판매하는 곳이었다. 과자 생각은 없었는데 안 먹으면 손해 볼 것 같은 기분에 사람들이 많이 들고 있던 과자 모양을 집었다. 이탈리아를 모르니 무슨 맛인지 물어보지도 못하고 그냥 모양을 보고 골랐다.

    ‘이거 한 개요’(u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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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브레 과자 같았던 부라노의 쿠키

    부라노섬에서 본섬으로 돌아와 바로 산 마르코 광장 광장으로 향했다. 걸어서 20분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산 마르코 광장 광장까지 걸어가는 길은 가까운 듯 멀게만 느껴졌다. 지도가 있어도 길을 잃어버리기 일쑤라는 베니스에서 배짱 두둑하게 지도 없이 출발했으니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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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니스는 마법의 도시다 누가 봐도 저 골목길의 끝은 높은 담벼락인데 일단 통과하고 나면 레스토랑이 나오고 작은 광장이 나온다. 저녁에 지나가면 해코지라도 당할까 무서울 법한 골목길의 끝엔 새로운 장면이 펼쳐진다. 건물 사이사이 운하가 퍼져있고 다리가 이어져 있다. 길을 잃어도 즐거운 도시다. 막다른 것 같아도 일단 전진하고 나면 새로운 발견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는 거침이 없었다.

    특히나 중간에 젤라또를 손에 쥔 이후부터는 세상 두려울 게 없었다. 한 손엔 카메라를 다른 한 손에는 티라미수와 마스카포네로 점철된 이탈리아의 맛을 쥐고 탐험가의 두근거림을 안고 오로지 감을 믿고 걸어갔다. 헷갈릴 때는 그냥 앞사람을 따라갔다. ‘어차피 저 사람도 광장에 가는 거겠지 뭐’ 그리고 광장이 나왔다.

     


    산 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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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 마르코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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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폴레옹이 그랬단다. 이곳은 거대한 응접실 같다고. 시간이 되면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종탑과 산 마르코 성당, 그리고 두칼레 광장까지. 정교하고 웅장한 건물로 둘러싸인 직사각형 모양의 광장엔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사진 찍는 사람, 걸터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 커피를 마시는 사람, 비둘기한테 모이를 주는 사람 등 다양하게 바쁘다. 광장 가장자리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는 라이브 연주를 하고 있었다. 광장에 음악이 울려 퍼지고 마치 연회장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광장이 거대한 응접실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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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 하늘에 서서히 퍼진 분홍빛은 순식간에 주홍빛으로 변해 버렸다.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또다시 가슴이 두근거렸다. 누군가 하늘에 오렌지 주스를 쏟아버린 건지 서쪽 하늘은 온통 주홍빛이었다. 그 아래로 베니스의 조명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배를 타고 다시 이동하면서 운 좋게도 베니스 야경 투어를 하게 됐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모두 갑판으로 나와 넋을 놓고 석양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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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이 자꾸만 나를 따라왔다.

    아, 7월 15일 보름이구나. 어릴 땐 달에는 토끼가 산다고 믿었다. 장롱 속 아빠의 망원경을 몰래 꺼내 보름달이 뜰 때마다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는지 지켜보곤 했다. 산타 할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기 훨씬 이전에 달과 토끼 이야기는 털어버린 지 오래다. 달이 자꾸만 따라오는 탓에 오랜만에 새삼 달을 자세히 봤다.

    너무 밝아 달 주변에 희뿌옇게 피어올랐다. 이런 걸 두고 휘영 찬란하다고 하는 걸까? 베니스에서는 모든 게 비현실 적이구나. 물 위에 떠있는 집들. 배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 거미줄처럼 이어진 거리들, 곳곳에 숨어있는 레스토랑과 가게들. 청량한 하늘과 쫄깃한 젤라또까지. 이곳에서라면 보름달에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밤비행이 좋아

    내 인생은 하나의 움직이는 축제에요.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걸 글로 옮겨요. brunch.co.kr/@avecr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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