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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찬란한 인도 여행, 세계문화유산을 찾아서!

    데이지 데이지 2011.08.02

    카테고리

    동남아, 인도, 역사/종교


     

     

    인도 여행, 세계문화유산을 찾아서! 

     

     

    '길에 굴러 다니는 돌도 세계유산일지 모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도는 그 전체가 찬란한 유적지인 나라입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만 해도 인도에 22개가 있다고 하니 굉장하지요? 궁금해서 찾아보니 그 22개의 유산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아그라 요새/1983년                 

    2.타지마할/1983년                  

    3.엘로라 동굴/1983년

    4.아잔타 동굴/1983년           

    5. 코나라크의 태양신 사원/1983년         

    6.마하발리 푸람 기념물군/1983년 

    7.케올라디오 국립공원/1985년          

    8.카지랑가 국립공원             

    9.마니스 야생동물 보호구역/1985년

    10.카주라호 기념물군/1986년       

    11.파테푸르 시크리/1986년        

    12.고아의 교회와 수녀원/1986년 

    13.함피 기념물군/1986년           

    14.브디하디스 바라사원,탄자브르/1987년            

    15.엘레판타 동굴/1987년

    16.파타다갈 기념물군/1987년              

    17.순다라반스 국립공원/1987년            

    18.난다데비 국립공원/1988년 

    19.산치의 불교기념물군/1989년        

    20.델리의 쿠트브 미나르 유적지/1993년    

    21.델리의 후마윤 묘지/1989년          

    22.다르질링 히말라야 철도/1999년






    이번 인도 여행 중엔 그 많은 유적지 중 4곳을 방문할 수 있었는데요, 한 곳 한 곳 들를 때마다 깨알 같은 역사적 사건과 인물,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다만, 세계사 공부를 좀 깊이 하고 올 걸 하는 후회감도 들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특히 유적지에서 더 절실하게 와 닿곤 하지요. (하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여행을 준비 할 땐 매번, 역사 공부 대신 8일 동안 무슨 옷을 입을까만 더 고민하게 되는 몹쓸 여행자입니다ㅎㅎ;)


    오늘은 인도의 여러 유산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지만, 이번에 둘러보고 온 유적지들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그런데 그전에 여러분!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심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계신가요?


    중앙에 있는 사각형은 인간의 기술 및 영감의 결과물을 상징하며, 바깥의 원은 자연을 나타낸다고 하네요. 사각형과 원은 이어져 있어, 인간과 자연이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표시하고, 도안의 둥근 형태는 세계를 나타내며, 인류가 함께 세계유산을 보호하자는 뜻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세계유산 홈페이지 참고) 인도에서는 자주 보게 되는 심볼이니 기억해 두시면 좋을 거예요~ (유적지 앞에서 아는 척 하기! ^^)









    #1.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이슬람 승전탑

     

    쿠트브 미나르 (Kutb Minar)

     




    5천년 인도의 역사를 보면 이슬람,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 외세의 침략에 끊임 없이 시달려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이슬람 세력들은 오랜 시간 인도를 지배하며 그들의 왕국을 세워 황금기를 누리기도 했는데요.


    제가 인도에서 본 대부분의 유적들 또한 바로 이 이슬람 왕조의 황금기 때 세워진 것들이었습니다. 인도에겐 아픈 상처이자 굴욕적인 식민지 시절의 잔재들이 지금은 '세계유산'이란 자랑스런 이름이 되어 인도를 살리는 중요한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 아이러니 합니다.










    델리에 있는 쿠트브 미나르는 인도 최초의 이슬람 국가를 건설한 쿠트브 우 딘 아이바크가 델리를 정복한 기념으로 1199년에 건립을 시작한 일종의 승전탑입니다. 높이가 무려 72.5 미터에 달하며, 힌두와 이슬람 건축 양식이 혼합된 5층 탑으로 내부엔 나선형 계단이 379개 있고, 각 층마다 발코니가 있습니다.


    1층의 지름은 15m, 5층은 3m로, 탑이 높아질 수록 원뿔대처럼 가늘어지는 모양 때문에 그 높이가 더 아찔해 보입니다. 인도에 있는 대부분의 궁전과 유적지가 그렇듯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졌고요.


    처음엔 내부를 개방해 탑 위로 올라갈 수 있었는데 어느 해인가 내부를 견학하던 단체 학생들이 조명없이 계단을 내려오다 도미노처럼 넘어지면서 압사 당하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로 내부 출입이 금지되었다고 합니다.











    층 사이에는 이슬람의 코란 문장들이 새로 띠처럼 둘러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반원과 삼각모양의 기둥이 번갈아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2층은 반원만 3층은 삼각형 모양만 반복됩니다. 


    원래 4층이던 탑은 14세기에 벼락을 맞아 복원하면서 5층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때 하얀 대리석 돔을 꼭대기 올렸었는데 이것도 지진으로 부서져 19세기에 다시 복원했지만 기존의 탑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거했다는군요. 단단한 돌에 새겼음에도 불구하고 무척 정교한 것에 놀랬는데 이 놀라운 기술은 인도의 다른 유적지를 볼 때도 계속되었습니다.










    탑 주변에서는 힌두교 사원의 흔적들도 볼 수 있습니다.










    이슬람 건축의 문양은 우상을 금하는 교리에 따라 사람, 동물등 살아있는 것은 소재로 삼지 않고, 별, 달, 나뭇잎 등 자연을 소재로 합니다. 한데 이 사원의 기둥을 보면 사람들 문양이 조각돼 있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이슬람 세력이 기존에 있던 힌두 사원을 무너뜨리진 않고 얼굴 부분의 형체를 알아 볼 수 없게 훼손해 놓았습니다.










     

    부서진 힌두 사원의 사암덩어리들은 다시 이슬람 사원의 재료로 쓰이고,

    그러면서 힌두와 이슬람 사원과 건축양식이 섞인 새로운 사원이 현재까지 공존하고 있습니다.

     








     

    코란이 새겨진 벽 위에 앉아 있는 이 인도 꼬맹이는 조상들의 아픈 역사를 알고 있을까요? 









    쿠트브 미나르 탑 옆에는 7m에 달하는 철기둥도 서 있는데, 이는 사원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인 4세기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2천 년이 넘어도 녹슬지 않을 만큼 순도 높은 철을 그 당시에 대체 어떻게 주조했는지 오늘날 과학자들도 밝혀 내지 못하고 있다고 하네요. 때문에 이 철기둥을 무척 성스럽게 여겨 기둥을 등지고 손을 벌려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미신이 있다고 하네요. 그러니 여러분도 이 철기둥을 만나게 되면 꼭 잊지말고 껴안아 보시길 바랄게요!









    #2. 400년 동안 철저히 잊혀졌다 보물로 다시 탄생한

     

     파테푸르 시크리 (Fatehpur Sikri) 궁전






    혹시 아들을 간절히 원하는 분들은 귀를 쫑긋 세워 주세요! 지금부터 신비로운 파테푸르 시크리 궁전의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파테푸르 시크리는 무굴제국의 악바르 대제가 건설한 도시인데요, 1571년부터 1585년까지 14년간 무굴제국의 수도였습니다. 무굴제국은 몽고의 후손인 바부르가 세운 이슬람 제국으로 '무굴'은 아라비아어로 몽고를 뜻한다고 하는데요. 무굴제국은 1526년부터 1857년까지 331년 동안 인도 최고의 번영기를 누렸습니다.


    그리고 그 중 3대 왕인 악바르 대제는 무굴을 제국의 반열에 올려 놓으며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악바르에게는 13년간 왕의 대를 이을 아들이 생기지 않는다는 고민이 있었고, 그는 영험하다는 예언자를 찾아 아그라에서 서쪽으로 40km 거리의 외진 도시, 파테푸르 시크리로 오게 됩니다. 여기서 그 그 영험하다는 성자는 이슬람교의 한 분파인 수피의 성자, 샤이크 살림 치스티였죠.


    악바르의 고민을 들은 이 성자는 그에게 곧 세명의 아들이 생길 것을 예언했는데, 그 이듬해 힌두 출신 아내 조다 바이가 첫 아들을 출산하게 됩니다. 너무 기뻤던 악바르는 성자에게 어떤 보답을 하는게 좋을지 고민하다 결국 아그라였던 수도를 성자가 있던 도시 파테푸르 시크리로 옮기게 됩니다. 


    왕궁을 건설하고 부인들과 함께 거처를 이 작은 도시로 옮겼지만 물 부족현상이 심각한 이 곳에서 오래 살지 못하고 결국 14년 만에 아그라로 다시 수도를 옮기게 되지요. 그 이후로 이 도시는 유네스코가 발견하기 전까지 400년 간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채 버려졌다고 합니다. 


    '승리의 도시'라는 도시 이름의 뜻과는 달리 비운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도시이지만, 도시의 탄생의 일화 때문에 지금도 파테푸르 시크리에 있는 성자 샤이크 살림 치스티의 무덤에는 아들을 바라는 인도 여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고 합니다. 


    성자의 무덤이 있는 이슬람 사원, 자마 마스지드와 악바르 대제의 왕궁, 그리고 올드시티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저는 일정 상 왕궁만 둘러 볼 수 있었습니다.









    왕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판치마할(Panch Mahal)'은 벽 없이 176개의 기둥만으로 이루어져 바람의 궁전으로도 불리우는 국왕의 개인처소입니다. 이 곳에서 왕의 아내들과 궁녀들이 머물렀는데 칸막이가 쳐진 작은 방이 350개에 달했다고 합니다. (음... 악바르 대제의 아내들이 400명이 넘었다고 하던데 그 말이 사실인가 봅니다.)










    판치마할 앞 파치시 정원(Pachisi Courtyard)은 체스를 좋아하던 왕이 바닥에 칸을 그려 넣고 궁녀들을 말 삼아 체스를 즐긴 곳입니다. 아직도 바닥에 그 때의 흔적으로 보이는 네모칸과 엑스표가 남아 있습니다. '파치시'는 인도의 체스를 뜻하는 말이라고 하네요. 거대한 체스판 위에서 살아 있는 말(궁녀)이 왕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놀이라니. 스판의 크기만큼이나 거대한 왕의 권력 앞에서 인간이 아닌 사물이나 다름없었을 그녀들의 고달픈 삶이 그려져 마음 한켠이 씁쓸해 졌습니다.











    정원이랄 것도 없이 단순하지만 정갈하고 소박한 정원의 조경 (너무 소박한 가요?)

    동글동글 솜뭉치 같은 나무들이 귀엽습니다.

     

     








    드문드문 직접 손으로 잡초를 뽑고 왕궁을 가꾸시는 분들의 노력이 숨어있었습니다.

     










    디와니카스 (Diwan-I-Khaas) 는 사암으로 지은 2층짜리 건물로 왕의 접견실입니다. 모든 종교에 관대하던 악바르는 이 곳에서 이슬람, 힌두, 기독교, 자이나교 등 여러 종교 지도자들과 토론도 하고 국사를 논했다고 합니다. 


    악바르이 가장 아끼던 세 명의 아내들의 각기 다른 종교를 보면 그가 다른 종교에 얼마나 열린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파테푸르 시크리 궁에는 이 세 아내의 궁이 따로 있었는데 첫번째 아들을 낳은 힌두 아내 조디 악바르의 궁을 가장 크고 화려하게 짓고, 이슬람 아내와 기독교 아내를 위한 궁도 아내들의 종교와 취향에 맞게 건물양식이나 내부의 문양에 세심하게 신경 써 지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조금씩 다른 세 아내의 궁을 찾아 보세요!








    악바르 대제의 개인처소인 아누프 탈라오 (Anoop Talao). 사각형의 연못의 중앙에 4개의 보행길로 연결되어 있는 연단이 놓여져 있고, 이 곳에서 왕을 위해 궁녀들이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물이 귀한 도시라고 했지만 궁 안에는 물이 가득 채워진 인공연못이나 목욕탕, 거대한 물탱크 등을 찾아 볼 수 있는데 물 부족에 대한 왕의 강박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악바르는 물 부족현상을 해결해 보기 위해 20km 미터에 달하는 인공호수를 건설했지만 부족한 물을 채우지는 못했습니다.










    왕은 이렇게 앉아 연못 가운데서 그를 위해 벌어지는 연회를 즐겁게 바라보고 있었겠죠?

    과거를 회상하듯 자리를 잡고 앉은 인도여인의 얼굴이 왕비처럼 아름답습니다.

     

     

     





    여행할 때 유적지를 애써 찾아 방문하는 것을 그닥 좋아라 하지 않는 저이지만 이번 인도여행에서의 유적지 방문은 무척 즐거웠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여행 기간 내내 함께 동행한 인도인 가이드 '쑤밋' 때문이었는데요. 한국 사람만큼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그가 들려주는 각 도시와 유적지들의 숨은 이야기들이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고 재밌어서 그 장소 앞에 역사 속 사건과 사람들이 홀로그램처럼 떠 있는 느낌이었답니다.



    언젠가 인도여행을 배낭여행으로 다시 하게 되면 개인 가이드로 '모시고' 다니고 싶을 만큼 완벽했던 가이드 '쑤밋'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싶습니다. 가수 '비'가 니X 카메라 광고 때문에 인도에 갔을 때도 쑤밋이 가이드를 했다고 하지요. 고마워요. 쑤밋!




    * 데이지 님은 하나투어 지원으로 인도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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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지

    세계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싶은 불완전 노마드 blog.naver.com/undercl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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