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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갑고 포근한 제주도의 어느 게스트하우스

    어보브블루 어보브블루 2014.06.20

    카테고리

    제주, 숙박

     

    살갑고 포근한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의 "유월 그리고 열두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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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쪽 산마루에 걸린 해가 길게 늘어져 붉은 햇살이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끼고 헐레벌떡 버선발로 뛰어나오는 주인장 부부는봄볕보다 더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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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무암 돌담을 두른 이 곳은 안채와 바깥채가 서로 마주보게 되어있는 구조를 가진 제주도의 전통 농가주택이다.
    이 곳의 바깥채는 게스트하우스의 카페로 쓰는 '유월' 이고 안채는 게스트하우스로 4개의 방이 있는 '열두마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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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안채로 들어서자 딱 보이는 공용거실. 거실에는 낮은 앉은뱅이 좌탁이 놓여있었고, 작은 냉장고가 있었는데 객실별로 물 2병을 드리니 자유롭게 냉장고를 쓰라며 덧붙여주셨다. 거실을 중심으로  큰 방 2개, 작은 방 2개 이렇게 총 4개의 방이 마주하고 있는데, 도미토리 객실 없이 모두 1~2인실로만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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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제주도 농가주택 자체가 작고 아담하기 때문에 큰 방이라고 해도 누울 자리를 빼고나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은데 이 곳의 큰방은 정말로 널찍했다. 물푸레나무로 만든 화장대와 수납장 위에는 바깥채 건물과 마당이 보이는 창문이 있고, 한옥 서까래를 그대로 살린 천장 아래엔 침대처럼 포근한 하얀 침구 한 채가 놓여있었다. 매일마다 침구를 세탁한 후 햇볕과 바람에 말려 소독한 뒤,체크인 시간 전까지 한 시간이 넘도록 하나하나 먼지를 제거하고 나서야 방에 놓이는 고운 이불이었다. 이 곳에서 정갈하게 편히 쉬고 가시라고 놓아둔 이불 한채에 괜히 마음이 시큰하다. 

    정말이지 이곳은 뽀오얀 분내가 날 것 같은 방이었다. 벽은 모두 하얀색으로 벽면이 아주 반듯하지는 않았는데, 돌로 쌓은 벽면을 그대로 살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캐리어나 가방을 둘 수 있는 구석진 자리에는 네모반듯한 러그가 놓여있었고, 화장대 서랍을 열어보니 빗과 드라이기는 물론이고 면봉과 화장솜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짐을 풀어놓고 하얀 이불 곁에 잠깐 누워보았다. 열어둔 창 너머 나무를 타고 들어온 때 늦은 오후의  바람이 은근하여 눈이 꿈벅꿈벅 감겼다. 일상 속의 지친 피로를 풀어놓고 가기에 이만한 호사를 누릴 공간이 또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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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실의 양쪽 끝에는 두 곳의 욕실이 있는데 욕실에도 작은 창을 내어 바깥의 현무암 담장을 볼 수 있도록 했다.  하얀 타일과 울퉁불퉁한 하얀 벽면, 그리고 샴푸와 린스, 바디워시는 물론이고 폼클렌징과 바디로션까지 준비되어있는 욕실비품이라니!  쓰다보면 자연스레 생기는 거품까지 닦아놓고 갈아둔 비누도 얌전히 놓여있었다. 이만하면 호텔 어메니티가 하나도 부럽지 않을 정도다.

    모두가 공용으로 사용하는 욕실이지만 이렇게 잘 가다듬어놓은 주인장의 노고에 손님들 모두 자기집처럼 정갈하게 욕실을 사용했다.

    다음날 아침, 욕실에 들어가보고 또 한번 놀랐다. 화장지는 곱게 삼각형 모양으로 접혀있고 누군가 말끔히 청소를 끝내 보송보송 말라있는 욕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모든 업무가 끝난 밤 11시쯤 주인장 부부가 또 한번 욕실청소 및 정리를 하신다고. 내일 아침 우리가 쓰기 편하게 정리해 두는 그들의 배려 덕분에, 이곳의 욕실은 마음까지 씻고 가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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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은 8시에 카페에 모두 모여 함께 먹는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무로 짜맞춘 커다란 책장이 보이고, 그 옆에는 주인장 부부가 후원하는 열다섯 명의 아이들 사진이 걸려있다. 언제나 갓 구운 쿠키와 차 한 잔 그리고 잔잔한 음악이 맞아주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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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외양간을 무너뜨리지 않고, 벽의 대들보와 현무암 돌벽을 살리느라 애썼던 부부의 노고가 참으로 값지다. 제주도에 다녀간 곳중 가장 멋진 건물을 꼽으라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 외양간을 고쳐만든 '유월 그리고 열두마루'의 카페를 꼽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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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날 제공된 아침. 마치 근사한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는 기분이었다.

     

    강판에 감자를 갈아 뭉근하게 끓여낸 감자스프와 호밀 샌드위치, 버섯을 볶고 크림치즈를 고명으로 올린 브루스게타, 물을 하나도 섞지 앉은  100% 토마토 주스가 테이블 위에 올랐다. 샐러드에 뿌려진 감귤 드레싱도 직접 만드신 거라고. 

    우리는 고작 하루에 6만원이라는 돈을 내고 머물다 가는게 죄송스러워질 정도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사람이 좋아서, 사람들이 맛있게 잘 먹고 웃는 걸 보느라고 새벽 5시에 일어나 따뜻한 한 끼를 만드는 것이 기쁨이신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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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박을 하는 손님이 있을때에 제공되는 두번째 아침 '어묵탕과 주먹밥'

     

    연박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에는 어제와 같은 메뉴를 대접하는 것이 미안하다며 새벽밥 짓고, 뜨거운 멸치 다시 육수 내어  '어묵탕'을 준비하셨다. 버섯과 빨간 고추를 얇게 저며 올리고 쑥갓까지 들어간 어묵탕은 한 숟가락 뜨는 손님들마다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그 뿐이랴. 김치를 총총 썰어 볶은 밥에다 김가루를 굴려 만든 주먹밥과 계란을 지단처럼 얇게 말아 만든 속을 채운 주먹밥은 보기에도 예쁘고 맛도 좋았다. 

    이 곳은 오래된 농가주택을 개조한 곳이기 때문에 방에서 음식물을 섭취할 수 없다. 음식 부스러기와 냄새 때문에 오래된 나무 서까래 사이에 벌레들이 생기게 될 뿐 아니라, 하얀 침구에 음식 얼룩마저 묻으면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또 주택을 개조하여 방을 나눈  곳이기 때문에 방음이 취약하다. 카페를 늦은 11시까지 열어두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화장대의 거울을 깨놓고도 아무 말 없이 체크아웃을 하거나, 빗이나 드라이기를 가져가는 일도 허다하며, 하얀 침구에 음료 얼룩이 생겨서 비싼 이불을 수 십 채 갖다 버리는 등 마음이 힘들고 고단했던 적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좋아서'  '우리집에 놀러 오셨으니 아주 맛있진 않아도 정성스런 한 끼와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하고 싶다는 그들의 아름다운 고집이 참 살갑고도 포근했다. 부디 그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방문자들이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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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항으로 떠나기 전 인사를 하러 카페에 들렀는데, 저쪽에서 헐레벌떡 뛰어나온 셰프 님이 작은 꾸러미 하나를 건네신다. 어젯밤 직접 반죽을 밀어 만든 쿠키와 카페에서 판매하는 예쁜 음료수 한 병이 들어있었다. 드릴 게 이거뿐이라 어쩌죠, 하는데 그 따뜻한 마음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이 인연은 무슨 인연일까. 이 짧은, 어쩌면 덧없이 스쳐가는 인연에도 마음을 다하는 이토록 귀한 사람들은....

     

     

    INFORMATION

     

    유월 그리고 열두마루 게스트하우스

    - 주소 :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 982

    - 홈페이지 : http://www.june12maru.com/

    - 예약은 2달전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가능하며, 농가주택의 특성상 어린이와 유아 동반은 불가합니다.

     

     

     

    어보브블루

    겁 많은 여자가 듬직한 남자를 만나 여행하며 사는 삶, 유목민이 되고 싶은 한량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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