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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체 쿠스코에 뭐가 있길래요?

    젠엔콩 젠엔콩 2019.03.15

    "대체 쿠스코에 뭐가 있길래요?"


    스코는 생소한 도시였다. 적어도 내겐. 비슷한 이름의 애니메이션을 본 기억이 나긴 했지만, 라마를 타고 천방지축 소동을 벌이는 디즈니스러운 모습만 떠오를 뿐이었다. 영화 속 배경이나 풍경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여행을 준비하다가 '쿠스코'라는 도시를 처음 보았을 때 내가 든 기분이었다.

    주변 지인에게 쿠스코에 간다고 하자, 비슷한 반응이었다. 페루하면 마추픽추 아니면 리마에 가는 거 아니야? 쿠스코에는 뭐가 있지? 나도 궁금했다. 대체 쿠스코에 뭐가 있길래? 미리 답을 알려드리자면, 쿠스코엔 황금의 나라가 있었다. 빛나는 황금은 모두 사라진, 그럼에도 찬란히 빛나는, 황금의 나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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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황금, 마추픽추

    한 때는 일 만명 이상이 살았던 공중 도시, 마추픽추. 1911년에 미국인 하이럼 빙엄이 발견하기 전까지 500년에 달하는 기간 풀 숲에 감춰져 있던 잉카의 마지막 도시. 수많은 여행가가 가보길 꿈꾸는 마추픽추는 해발 2,400미터에 위치했다.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백두산이 2,700미터이니 백두산 산 중턱에 도시를 짓고 산 셈이다. 공중 도시라는 표현이 딱 맞는 마추픽추는 보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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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톤에 가까운 돌을 가공해 만든 집들은 잉카의 기술력이 얼마나 뛰어났는 지를 보여준다. 조그마한 틈도 허용하지 않고 정교하게 쌓은 건물을 보면 경이롭다. 게다가 이 바위들은 이곳으로부터 수 십킬로미터 떨어진 바위 산에서 채취해 왔다고 하니 잉카인을 외계인이 아닐까,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수긍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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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에서 농작물을 재배하기 어려워, 잉카인은 계단식으로 깎아 옥수수 농사를 지었다. 현대 기술력으로도 힘든 일을 어찌 해냈을 지 궁금하다. 구리를 철처럼 강하게 제련해서 기구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기술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잠들어 버린 고대의 기술은 아마 영영 비밀로 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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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허가 된 잉카의 유물 옆에서 라마는 유유히 풀을 뜯고 있다. 평화로워 보인다.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문명이 사라진 곳에 새가 자유로이 노니는 모습이 떠오른다. 마추픽추엔 라마가 풀을 뜯는다. 얼마나 평화로운 모습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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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바라기 중인 귀여운 라마. 침을 뱉으니 조심할 것. 끈적하고 양이 많다.

    ♦ Travel info.
    사실 마추픽추는 쿠스코에서 200k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그러나 대부분 쿠스코에서 출발해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경우가 많다. 기차로 5시간 가량 소요된다. 긴 여정이 부담된다면 중간 지점인 우루밤바에 숙소를 잡아도 좋다.


    #두 번째 황금, 오얀타이탐보

    오얀타이탐보는 쿠스코와 80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잉카 연대기에 따르면 오얀타이탐보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태양신을 모시는 신전과 왕녀를 위한 목욕탕을 갖춘 번영한 도시이기도 했다. 본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화려했을 텐데. 결국 스페인 침입자를 막아 내지 못하고 도시는 쇠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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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파른 협곡을 계단식 경작지로 만든 옛 잉카인의 실력은 다시 봐도 놀랍다. 참고로 오얀타이탐보라는 이름엔 슬픈 전설이 있다. '오얀타이'라는 장군이 살았다. 그는 잉카의 공주와 사랑에 빠진다. 아무리 장군이라지만 왕족은 아니었을 터. 신분 차이로 사랑은 이뤄지지 못한다. 화가 난 왕이 공주를 국외로 추방시켰기 때문이다. 장군은 비탄에 빠져 죽고 만다. 훗날 그가 평안하길 바라는 의미에서 이 도시의 '오얀타이의 휴식처', 즉 오얀타이탐보라고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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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카인은 내세를 믿었다. 장군과 공주가 다음 생에선 행복하게 서로를 사랑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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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픈 전설은 잠시 잊고 주변을 산책했다. 온전한 모습이 남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보면 볼수록 아쉬웠다. 토대와 벽이 견고하게 쌓여 있었다. 계단식 경작지를 가득 채운 꽃들, 거대한 돌로 만든 성벽, 스페인 침입자가 기록한 오얀타이탐보는 이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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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책하다 만난 알파카. 복슬복슬한 털이 귀엽다. 카메라를 드니 자세를 잡아준다. 모델에 소질이 있는 알파카였다.

    ♦ Travel Tip.
    쿠스코에서 오얀타이탐보까지는 자동차로 약 2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계단식 경작지를 모두 올라가기를 추천한다. 계단 정상엔 태양의 신전을 나타내는 거석을 볼 수 있다.


    #세 번째 황금, 아르마스 광장과 시내

    흡사 유럽에 온 듯한 느낌을 주지만, 유럽과는 다른 건물을 쿠스코 시내에서 만날 수 있다. 아르마스 광장은 쿠스코의 시내에 자리했다. 원래 이곳엔 잉카 제국이 건설한 대광장, 아우카이파타가 있었다. 그리고 성당이 있는 자리엔 비라코차 대신전이 위용을 드러냈다. 스페인 침략자는 잉카의 화려한 문명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찬란한 문명을 이룩한 잉카에게 위협을 느꼈던 걸까. 침입자들은 잉카의 도시를 무참히 부수고 그 위에 자신들이 가져온 문화를 덮어 씌웠다. 유럽식 광장을 만들고 성당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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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건축 양식을 닮았지만, 자세히 보면 어딘가 다르다. 아마 사용하는 건축재가 본토와 달랐기 때문이겠지. 아니면 은연 중에 남아 있는 잉카의 건축 양식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곳은 잉카의 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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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스코 시내는 어느 곳을 가도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 걷기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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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장엔 사람들이 모여 햇살은 담뿍 머금고 휴식을 취한다. 그들의 여유에 동참하고 싶은 기분. 나무 그늘 진 벤치에 앉아 책을 읽으면 참 좋겠지. 이사벨 아옌데가 쓴 환상적인 이야기가 잘 어울리겠다. 한 세대는 다음 세대로 이어지며, 페루는 서서히 변해간다. 새로운 모습으로, 옛 문명을 마음에 품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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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지고 어스름이 광장에 내린다. 쪽빛으로 물든 광장은 새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가로등에서 조금씩 주황빛이 퍼져나온다. 조화로이 뒤섞이는 물감처럼 아름다웠다.


    #네 번째 황금, 비니쿤카

    해발 5,000미터의 고산. 비니쿤카. 그 이름엔 일곱가지 빛깔이란 뜻이 있다. 매우 높은 고도인 만큼 만년설도 볼 수 있다. 살면서 이토록 높은 곳에 올라와 보다니. 독특한 기분이었다. 빠르게 움직이면 산소가 부족하단 느낌이 들었다. 뭐, 크게 불편하진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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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로 올 수 있는 만큼 오고 나면 정상까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 걸어가기 또는 말타기. 절반은 걷고 절반 말을 탄다. 고산지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무리해서 산을 오르다 보면 산소 부족이 되기 쉽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으려 말을 탔다. 터벅터벅 걷는 말 뒤에서 풍경을 보고 있자니 문경새재를 넘던 양반이 된 기분이 들었다. 조선시대에 멀고 먼 남아메리카에 양반이 찾아 왔다면 어땠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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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넓고 맑은 자연은 마음을 상쾌하게 만든다.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전경이 컴퓨터 그래픽처럼 보였다. 마음 같아선 초원을 달려보고 싶지만, 참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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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그런데 이게 웬일. 맑았던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었다. 비니쿤카의 날씨가 변덕스럽다더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5분만 더 빨리 왔어도 훤히 보였다고 하던데. 정상에 도착했을 땐 산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일곱가지 색은 사라지고 회색 하나만 남았다. 바람이 쌩쌩 불었다. 해발 5,000미터의 바람과 추위는 상상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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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순 없지! 바람이 계속 불고 있으니 구름도 조만간 물러 가리란 믿음으로 버티고 버텼다. 끝내 그 위용을 드러낸 비니쿤카를 만났을 땐, 초고산지대이면서도 인기가 많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형형색색 찰흙을 정성들여 반죽한 것처럼 예뻤다. 이토록 특별한 자연이라니. 역시 지구는 넓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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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당에서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 화려한 의상과 흥겨운 음악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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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은한 붉은 벽돌은 성당에 독특한 흥취를 더한다. 잉카 문명을 내포한 성당 같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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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니쿤카에서 만난 소년. 저 무늬를 소화하다니. 페루 패션 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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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실토실 귀여운 엉덩이. 찹쌀떡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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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하게 웃는 자매. 지금 이 순간에도 환하게 웃고 있기를. 자매의 미소가 쿠스코에서 만난 가장 아름다운 황금이었다.

    ♦ Travel Info. 쿠스코 가는 방법
    인천에서 직항편은 없다. 인천-멕시코시티-리마-쿠스코라는 긴 여정을 거쳐야 한다.


    주의사항
    쿠스코는 해발 3,400미터에 위치한 도시고, 비니쿤카는 5,000미터가 넘는다. 즉, 고산병에 주의해야 한다. 고산병 약은 물론, 산소호흡기를 챙겨가는 편이 안심. 무리해서 돌아다니지 않으면 심하게 아프거나 하진 않지만, 개인차가 있을 수 있으니 준비하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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