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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 바람 솔솔 부는 '악마의 정원에서'

    낟나 낟나 2011.09.28




    요즘 날씨가 정말 좋습니다. 하늘은 높고, 제가 살찌는 계절이죠. 요즘은 과일도 맛있고, 밥도 맛있고, 고기도 맛있고, 빵도 맛있습니다. 먹고 나서 뒤돌아서면 또 먹고 싶은 계절, 가을이 찾아오니 앉아 있기만 해도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납니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악마의 정원에서(IN THE DEVIL'S GARDEN)라는 책입니다. 저자는 스튜어트 리 앨런으로, 생각의 나무에서 펴낸 책이죠. 이 책은 음식, 음식을 먹는 행위에 대해 설명해 줍니다.


    책에 따르자면 음식을 먹는 행위는 곧 다른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먹는다는 건, 먹는 행위 이면에 다른 무언가가 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화기애애한 자리이지만, 그 식탁 위에 나열된 음식만으로도 지금 식탁을 둘러싸고 앉아 있는 이들이 소리 없는 전쟁 중임을 알려 줍니다. 때로는 인물의 성격을 암시하기도 하는데, 그것들은 대체로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상징들입니다. 한강의 책 ‘채식주의자’에서 여자 주인공은 한사코 고기 먹기를 거부하는 채식주의자로 나오는데, 그녀는 식물처럼 연약하고 예민하지만 경건하고 성숙한 마음가짐을 지녔습니다. 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고기는 탐욕스러움을, 채식은 경건함과 평화를 상징하기도 하지요. 그밖에도 먹는다는 행위와 맛을 본다는 감각은 여러 문학에서 중요한 소재로 쓰였습니다. 영화 '301,302'를 잉태해냈던 시 하나가 생각나네요. 이런 말을 하니 꼭 가을에 폭 잠겨 버린 문학소녀 같군요!




     






    요리사와 단식가


                               장정일


     1

    301호에 사는 여자. 그녀는 요리사다. 아침마다 그녀의 주방은 슈퍼마켓에서 배달된 과일과 채소 또는 육류와 생선으로 가득 찬다. 그녀는 그것들을 굽거나 삶는다. 그녀는 외롭고, 포만한 위장만이 그녀의 외로움을 잠시 잠시 잊게 해준다. 하므로 그녀는 쉬지 않고 요리를 하거나 쉴 새없이 먹어대는데, 보통은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한다. 오늘은 무슨 요리를 해먹을까? 그녀의 책장은 각종 요리사전으로 가득하고, 외로움은 늘 새로운 요리를 탐닉하게 한다. 언제나 그녀의 주방은 뭉실뭉실 연기를 내뿜고, 그녀는 방금 자신이 실험한 요리에다 멋진 이름을 지어 붙인다. 그리고 그것을 쟁반에 덜어 302호의 여자에게 끊임없이 갖다준다.


     2

    302호에 사는 여자. 그녀는 단식가다. 그녀는 방금 301호가 건네준 음식을 비닐봉지에 싸서 버리거나 냉장고 속에서 딱딱하게 굳도록 버려둔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먹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는 외롭고, 숨이 끊어질 듯한 허기만이 그녀의 외로움을 약간 상쇄시켜주는 것 같다. 어떡하면 한 모금의 물마저 단식할 수 있을까? 그녀의 서가는 단식에 대한 연구서와 체험기로 가득하고, 그녀는 방바닥에 탈진한 채 드러누워 자신의 외로움에 대하여 쓰기를 즐긴다. 흔히 그녀는 단식과 저술을 한꺼번에 하며, 한 번도 채택되지 않을 원고들을 끊임없이 문예지와 신문에 투고한다.


     3

    어느 날, 세상 요리를 모두 맛본 301호의 외로움은 인육에까지 미친다. 그래서 바싹 마른 302호를 잡아 스플레를 해먹는다. 물론 외로움에 지친 302호는 쾌히 301호의 재료가 된다. 그래서 두 사람의 외로움이 모두 끝난 것일까? 아직도 301호는 외롭다. 그러므로 301호의 피와 살이 된 302호도 여전히 외롭다.




    이 시는 언제 읽어도 섬뜩하니 퍽 재밌습니다(?).


    '악마의 정원에서'는 금기된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음식들은 대개 자유롭습니다. 스스로 거부감만 들지 않는다면 취향대로 선택하여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점심으로는 햄버거를 먹어도 되고, 저녁으로는 날 것을 정성스럽게 썰어낸 회를 먹어도 됩니다. 그만큼 음식의 선택은 자유롭고 풍요로워졌습니다. 종교의 이유로, 건강의 이유로 금기시되는 몇몇의 음식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알 수 있듯이 조금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도 이 이야기는 큰일 날 소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먹어서는 안 될 여러 음식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저자는 이 음식들을 색욕, 폭식, 오만, 나태, 탐욕, 불경, 분노 등으로 분류하여 나누고 있습니다. 대개 유럽의 역사이니만큼 종교와 관련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긴 하지만, 그런 부분쯤은 눈 감고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책 내용이 아주 재밌습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돼지가 가장 만나고 싶어할 만한 사람이다. 아니, 그럼 점에서라면 소나 양도 마찬가지의 심정일 것이다. 이 대량 학살자가 그만큼 철저한 채식주의자였다는 얘기다. 심지어 영화를 보다가 동물들이 해를 당하는 장면이 나오기라도 하면 눈물을 흘리면서 눈을 가리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장면이 끝나면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는 종종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시체를 먹는' 위선적인 이들이다. 그러므로 지배자 민족이 될 자격이 없다."  (p.308)



    허, 믿을 수 없는 내용이지요.


    이 책은 재미있습니다. 소설이 아니어도 참 재밌습니다. 사실 전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재미있더라고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을 때에도 그가 만들어낸 샌드위치나 파스타에 군침을 흘리게 되고, 그 음식을 만드는 주인공의 섬세한 손길에 감탄하곤 합니다. 때론 음식이 백 마디 말보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줄 때도 있지요. 간혹 그 음식이 백 마디 말을 지워내기도 하고요.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부는 요즘, 맛있는 음식에 대한 책 한 권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어쩌면 잔혹한 그림 동화처럼 음식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줄지도 모릅니다.



    * 책 표지 그림은 yes24에서 퍼왔습니다.

    낟나

    어느 출판사에서 고전문학을 편집하고 있는, 아직 걸음마 배우고 있는 새내기 편집자입니다. :-) http://blog.naver.com/aswism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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